제목: 차별하지 말라
본문: 야고보서2:1-13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 당시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 가운데 바울의 복음을 잘못 이해해서 남들을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며 자신이 올바를 신앙생활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행함은 차별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1절 말씀 읽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본문은 차별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차별은 사전적 의미로 특정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 혹은 불이익을 주는 것도 모두 차별이라고 합니다. 즉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편견을 나 스스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행동으로써 나타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천한 육신을 통하여 이 땅에 오셨어 비천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믿음 구원을 받는 것 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것 입니다.
차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우리가 차별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고 희생하신 삶이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 앎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믿음이 아니라 실천하는 믿음이 되실길 소망합니다.
이어서 2~4절 읽겠습니다.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는 구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빈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부유함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자 남루한 옷을 입은자 즉 거지를 대할때 차별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별에 익숙합니다.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좋은 차, 좋은 시계를 사야한다고. 즉 보여지는 것으로 사람의 신뢰성도 살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는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보여집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한 전도사님이 거지 분장을 하고 교회 앞에 앉아있는 영상이였습니다. 전도사님이 그렇게 분장을 하고 예배 시작 전 교회 앞에서 구걸하며 앉아 있는데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들어가면서 외면하고 혹은 심지어 피해가더라고요. 그 영상 속에 사람들만 그러한 태도를 보일까요? 저는 솔직하게 저 또한 그 영상 속 청년들 처럼 외면하고 지나갔을 것 같습니다. 차별을 하지 않더라도 외면했을 것 입니다. 이처럼 차별하는 것은 이 상세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익숙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시지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을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 말씀 읽겠습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이들이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는데 1차적 대상이라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기준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차별한다면 어떻게 되는냐. 이는 가난한 자들과 부자를 차별하는 것에서 나아가 성도들끼리 서로 구별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차별은 악한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와 정반대가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을 부유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5절 읽겠습니다.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복 주신 자들을 천대하고 비방하였습니다.
6절에서 7절 읽겠습니다.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차별 없이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차별 없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4절~34절 말씀을 보면 만달란트와 백달란트를 빚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왕에게 만달란트 빚진자가 탕감을 받았는데 자신에게 백달란트를 빚진자는 탕감해 주지 않고 오히려 옥에 갇두는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그 또한 옥에 가두었습니다.
원래 이 비유는 용서에 관한여 비유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설교를 준비하는데 이 비유가 생각 나더리고요. 내가 너희 모두를 차별 없이 귀히 여기고 복을 주였는데 어찌하여 너는 차별을 하는가? 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 갚을 수 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차별하며 사랑을 베푸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 베푸시는 강남 성은교회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본문 8절에서 11절 말씀 읽겠습니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를 야고보는 최고의 법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최고의 법의 원어는 바실리코스는 왕법이라는 의미로 누구의 의하여 법할 수 없는 최고의 법을 이야기 합니다. 즉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라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 읽겠습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처럼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 말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는 길 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웃을 차별과 편견 없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차별하는 것은 결국에 죄를 짓는 것과 똑같습니다. 율법은 모든 것을 지켜야 하는 것 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율법주의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삶의 표준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의 무게를 두고 처벌의 세기를 달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닙니다. 우리는 똑같은 죄인인 것입니다.
죄의 무게를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가벼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차이가 없습니다. 항상 나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본문 12절에서13절 말씀 읽겠습니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자유의 율법은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이는 강제적으로 두려움에서 지키는 것이 아닌 자유와 사랑으로 지키는 법입니다. 즉 이 율법은 정죄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닌 삶의 표준이 되는 율법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에게는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고. 고린도 후서 5장 10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모든 행위와 삶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긍휼은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입니다. 이는 율법의 근본 정신이며 내용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9장 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것과 같이 우리의 이웃을 긍휼이 여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