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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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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장12-15절. 죄와 사랑 (24년 10월 6일, 김성훈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4-10-06 00:05    조회 96    댓글 0  
 


본문: 호세아 412~15

제목: 죄와 사랑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

 

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13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14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도시인 벧엘과 길갈과 사마리아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었던 훌륭한 예언자입니다.

 

이런 호세아는 어느 날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멜이라는 여인은 호세아에게 어울리는 여인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이 여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1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2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아마 요새 나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런 여인과 결혼한다고 한다면 뜯어말릴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여나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한다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차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비록 이런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아무런 질문도 궁금증도 가지지 않은 채 순종하며 고멜과 결혼하였고 3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걱정처럼 고멜은 역시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호세아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한 이후에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면 돌에 맞아서 죽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될 정도로 아주 큰 죄였습니다. 호세아 25절에서는 고멜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25

 

5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고멜은 호세아의 사랑을 버리고 당장에 이득이 되는 것들을 탐하고 호세아를 떠나 자신이 추구하는 삶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며 뒷담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사람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따라 떠나갔다니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재밌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감히 그런 말을 할 자격들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호세아 4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412

 

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이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무 신상을 만들어서 그것에게 물어보고 절하고 예배드렸습니다. 고멜 만큼이나 큰 잘못을 한 사람들입니다. 남들의 죄는 크게 보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자기 죄는 작게 보고 심지어 죄인 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결국 고멜과 똑같은 죄인들이었어요.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닌 나무에서 묻고 음란한 마음에 미혹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께 예배하였던 이들입니다. 그 시작은 작은 것이었습니다. 편리함이었습니다. 호세아 4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413

 

13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원래 산에서 제사를 지내던 것은 원래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나안 토착 원주민들이 하던 우상숭배와 관련된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자 북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루살렘 성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고 왕은 만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남유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려고 한다면 자신의 자리가 위험하리라 생각하고 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남쪽으로 가는 백성들이 예배드릴 방법을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뜻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묻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하나님은 사라지고 이렇게 편하게 자기 마음대로 장소를 정하고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산에 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받아들였던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편리하다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너무 편리한 시대 같습니다. 주문하면 하루 이틀 안에 택배가 오고, 먹고 싶은 음식을 집에서 배달로 시킬 수 있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동영상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많은 교회가 인터넷 방송 송출을 시작하였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영상을 통하여 예배를 처음으로 드려보고 만족해하는 분들도 많고 믿지 않는 분들에게 노출이 되어서 전도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내가 편리하여서 동영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배를 듣기 위해 참여한다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다닌 것에 어떤 불편함이 있더라도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유혹을 받을 수 있으며 작은 마음의 균열은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계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작은 균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이 나무에서 물어보고 제사 지내는 것을 보면서 내 안에 균열한 마음이 있는지 심각하게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었는지 호세아 414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414

 

14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이러한 예배 형식 역시도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았던 마음의 균열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세속 문화에 미혹되어 풍요를 얻기 위해 이러한 악한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415절입니다.

 

호세아 415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호세아는 유다에게 이스라엘과 같은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길갈과 벧아웬을 가지 말고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벧아웬은 원래 벧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야곱이 꿈속에서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고 너의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질 것이고 이 땅도 너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이러한 환상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벧엘은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이며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상의 집이라는 의미로 벧아웬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길갈 역시도 승리를 의미하는 장소였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정착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12개의 돌을 세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금의 이스라엘 땅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기억하고 경험할 수 있던 자리는 이제 이방신들을 세운 신상으로 더럽혀지고 과거의 위대한 영광은 모두 잊혀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더 이상 이들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종말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으로도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호세아 3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31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그들이 어떠한 끔찍한 죄를 지었든지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호세아에게도 고멜의 죄를 감싸고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끔찍한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고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악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수 없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탄과 마귀가 방해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악한 것을 덮으십니다.

 

내가 죄를 더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더욱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사람은 죄를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한계가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차례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완벽한 사랑을 우리는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랑하기를 더욱 간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랑받을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이 누구든 아무 편견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짓지 않도록 다짐하지만, 다시금 죄를 범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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