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과부를 존대하여라.
본문: 디모데전서 5:3–8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디모데전서 5:3–8 DKV
3 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여라.
4 그러나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 집에서 신앙적 의무를 다하는 것과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5 참과부로서 외로운 사람은 자기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밤낮으로 기도와 간구에 전념한다.
6 향락을 좋아하는 여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다.
7 또한 너는 이것들을 명령해서 그들로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다.
교회의 가장 주된 역할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일과 더불어서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선교와 구제입니다. 구제에 대한 가르침과 중요성을 말하는 성경 말씀은 무척이나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자립하기 어려운 세 분류의 사람들을 돌볼 것을 요청하셨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입니다.
신명기 10:18–19 NKRV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명기 14:29 NKRV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돌보면, 복 주시겠다.”
신명기 26:12 NKRV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들로 배부르게 하라.”
지금도 어렵지만, 고대 중동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는 자립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도 보육원 퇴소한 청년들의 삶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괄시의 눈초리를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돌싱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남자나 여자가 이혼 또는 사별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의 비율이 많아지고 있고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사회적으로 불편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재산 분배도 법적으로 보호받아 그 이후에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거에는 아니었습니다.
구약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여자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아서, 민수기 27장에 보면 슬로브핫의 딸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초대 교회 시대인 로마 시대에도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대에 여성은 남편의 유언에서 직접적인 상속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결혼 때 가져가는 지참금뿐입니다.
당시 여인은 결혼할 때 부모가 준비한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했는데, 나중에 사별하게 되면 유일한 경제적인 보호 장치가 그 지참금이었습니다. 과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들이 지참금을 관리하며 어머니를 돌보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지참금을 들고 친정으로 돌아가 친정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참금이 없거나, 아들도 없거나, 친정아버지가 없어서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런 과부들의 불안한 상태, 그런 상태를 이용해서 금전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겠죠?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비난을 하시기도 했다.
마가복음 12:40 DKV
40 그들은 과부의 집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참과부입니다. 초대교회 안에 과부가 많았다는 것은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되는 배경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1 DKV
1 이 무렵 제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때 그들 가운데 그리스파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 사람들에 대해 불평이 생겼습니다. 매일 음식을 분배받는 일에서 그리스파 유대 사람 과부들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과부 중에 참과부인 사람을 존대하라고 가르칩니다.
디모데전서 5:3 DKV
3 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여라.
'존대하라'라는 헬라어 τιμάω(티마오)는 십계명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할 때 그 공경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참과부를 그저 도움을 줘야 할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부모처럼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과부를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끝내는 관계가 아니라, 부모를 모시듯이 존경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돌봐야 할 과부의 조건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뒤인 11절부터의 말씀이니 생략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가 돌보기 전에 먼저 가정에서 효를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5:4(우리말)
4 그러나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 집에서 신앙적 의무를 다하는 것과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디모데전서 5:4(개역개정)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효라는 단어가 우리말 성경에서는 "신앙적 의무"라고 번역했는데요, 원어적 의미는 “마땅한 존경”입니다. 부모에게 당연하게 해야 할 존경입니다. 그런 면에서 동양사상의 효는 무척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12 DKV
12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오래 살 것이다.
레위기 19:32 NKRV
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에베소서 6:2 NKRV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그러니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먼저" 그들로 하여금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모실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효도를 다 할 수 있도록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과부라고 해도 다 같지는 않았습니다. 두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는
디모데전서 5:5 DKV
5 참과부로서 외로운 사람은 자기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밤낮으로 기도와 간구에 전념한다.
'외로운 자'는 원어적 의미로 '홀로 남겨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힘든데, 주변을 돌아봐도 정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기도와 간구에 전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힘들어서 그것을 잊고 싶어서 향락에 빠져버리는 사람이 있다.
디모데전서 5:6 DKV
6 향락을 좋아하는 여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들입니다. 육신은 살아 있는데, 영혼은 죽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육신도 죽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이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의지하던 사람이 내 곁을 다 떠났더라도,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고 삶의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오직 주님을 바라시기를 바랍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듯이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시길 바랍니다.
시편 42:5 NKRV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교회는 슬픔 가운데 있는 이들로 하여금 그 슬픔을 이겨낼 방법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7 DKV
7 또한 너는 이것들을 명령해서 그들로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런 슬픔 가운데 있는 가족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인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8 DKV
8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봐야 할 사람들을 많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까이는 우리 가족과 친척 중에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 손에 돌봄을 받지 않게끔 우리가 먼저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한 지체입니다. 곧 우리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이들의 어려움 또한 우리가 함께 돌봐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이웃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속회별로 선교 대상을 정해서 기도하며 돕고 있습니다. 또 동남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선교의 지경을 넓히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있습니까? 이 모두가 우리의 식구이고 그들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삶일 수 있지만, 잠시 부모님, 친지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