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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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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1장 1-2절.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과 헌신(24년 9월 22일, 김성훈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4-09-21 17:36    조회 140    댓글 0  
 

말씀본문: 느헤미야 111-2

말씀제목: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과 헌신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 다하여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오늘 말씀은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을 완성한 이후입니다. 이스라엘의 염원이었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었고 지도자였던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 갱신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통하여 외형적으로 국가적 기틀을 갖춰졌고, 율법을 낭독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금 갱신하였습니다. 이제는 내적으로도 신앙의 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명실공히 선민 공동체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74절에서는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전쟁을 겪으며 가장 황폐해진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속해서 주위적으로부터 견제를 받아왔기에 농사와 가축을 키우기가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루살렘이 아닌 그 주변으로 흩어져서 살아가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예루살렘은 완벽하게 준비되었지만, 정작 예루살렘은 필요한 인구가 충분히 거주하지 않았기에 수도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백성들의 예루살렘 이주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같은 상황을 속담으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담의 뜻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음을 뜻하는 속담입니다. 개살구는 살구와는 다르게 산기슭에서 자라며 살구보다 더 노랗게 익어서 맛있어 보이지만 정작 먹게 되면 시큼하고 떫어서 맛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방에서는 해수·천식·기관지염·급성폐렴·인후염·종기를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개살구가 비록 맛은 없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 장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속담의 개살구처럼 보기에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예루살렘으로의 이주는 생업의 터전을 떠나야 하고,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직면한 예루살렘에서 힘써 싸우며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해야 하며, 당시 예루살렘이 심각하게 황폐해지어 거주할 집조차 부족하였으며 이주를 위한 어떤 지원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볼 때는 이런 막대한 손해처럼 보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실속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말씀의 선포를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 세상에서 바라볼 때 실속도 없고, 손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히 아픔과 슬픔을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이 오히려 축복이며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빛 좋은 개살구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때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는 실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예루살렘과 같은 곳으로 이주해야 할 정도로 큰 변화와 결단을 가지고 고민하고 계신다면 당장에 눈앞에 이득을 따지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 먼저 발견하기 위해 힘쓰시고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예루살렘이 온전한 수도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하여 성에 거주할 사람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느헤미야 111절 읽겠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지도자들은 거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당연히 먼저 거주하였습니다. 정작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곳에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은 누구일까요? 당시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지도자의 의미를 현대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 모두 한 지체, 한 지체가 모두 지도자일 것입니다. 왜 그런지 베드로전서 29절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약에서는 각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는 각자의 직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이끌어가는 지체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성도를 가장 낮은 직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도 할지라도 자기 가정을 주님의 곁으로 이끌어야 가야 할 위대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적 원리를 따라 지도자들이라면 당연히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혹여 그런데도 나는 지도자보다는 누군가 이끌어주는 데로 따라가고 싶다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실제로 1절에서는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주할 사람을 뽑았습니다. 과거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분배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비를 뽑았던 것처럼 예루살렘에 거할 자를 선정하는 일 역시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을 넘어선 그리스도인 전체가 지도자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도자이지만 우리를 모두 이끄시는 분은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도자라고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거나 우리는 결국 모두 그리스도께 인도받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아직 솔선수범하고 먼저 나서고 봉사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신다면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 위해 힘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토 달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용서받을 자격이 없으며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는 고통을 받으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까지 하실까요?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순종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죄송스러운 마음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실제로 백성들의 순종하는 자세가 나옵니다. 느헤미야 112절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자원하는 백성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바라며 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리낌 없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과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모습입니다. 거룩한 성은 현재에는 개인의 삶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절 읽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점에서, 각 개인이 '거룩한 성'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을 회복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무너져 있다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며 나의 이득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닐지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고 참여하는 하나님께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 제목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과 헌신을 위해서 먼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자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에 사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순종하는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실속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나서며 세상의 이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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