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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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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29-34절,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2024년 1월 13일, 김선룡 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4-01-12 23:39    조회 986    댓글 0  
 

강남성은교회 / 성은 일상의 말씀


강남성은교회 / 성은 일상의 말씀

제목: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본문: 마태복음 20:29–34
찬송가: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마태복음 20:29–34 DKV
29 그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습니다. 


30 눈먼 사람 두 명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1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2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33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우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34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곧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으로 보면, 3년의 공생애 중에 클라이맥스이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시점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요즘으로 말하는 연예인들 이상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변에 모였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안티세력들도 있어서,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마술쇼처럼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먹을 것을 기대하며 모인 사람들, 돈을 벌어 볼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등,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갖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는 정말로, 정말로 예수님이 필요해서 모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대받던 자기들과 함께 식사를 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자기에게 사랑의 손길을 건네주는 유대인이셨습니다. 십수년간 어떤 의원도 고치지 못하는 자기의 병을 고쳐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아셨음에도, 자신을 용서하며 영원한 샘물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 없이 살아갈 수 없었기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쫓던 무리 안으로 오늘 또 다른 사람이 동참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20:30 DKV
30 눈먼 사람 두 명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눈먼 두 사람이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리고는 아주 오래된 도시입니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르지 않는 샘,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풍요를 뜻하는 종려나무,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추야자나무가 종려나무인데, 사사기 3장 13절에서 언급된 ‘종려나무 성읍’이 바로 여리고 성입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에 첫 관문이었던 여리고와 예수님 당시 여리고는 같은 지역이긴 하지만, 조금은 차이 있습니다.

지도 1, 지도 2

여리고는 돈이 많은 도시였는데, 신약에서 돈과 관련된 이야기의 배경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가 여리고입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여리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강도 만난 사람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강도도 있는 법입니다.
헤롯 대왕은 겨울 궁전을 지어서 별장으로 이용할 정도로 여리고는 당시에도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그렇게 부유하고 번화한 도시였으나, 그 부유함을 모두가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유함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0:30 DKV
30 눈먼 사람 두 명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눈먼 사람 두 명이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구걸하는 자리였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긴 시간을 구걸해야만 했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먹고 살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두 명이 아니라 맹인 한 명이라고 기록되었고, 마가복음에는 더 확실하게 그 맹인의 이름이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고까지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태복음의 기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 따라 중요한 사건은 한 사람의 말로만 증거가 될 수 없고 두세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었기에,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 사건이 유대인 관점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입니다.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두 사람만 고침 받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음을 받았고, 그뿐 아니라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육신의 약함이 치유될 줄 믿습니다! 오늘 새벽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실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에 눈먼 두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방해가 될까 봐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한 번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요? 자기들은 예수님 계신 곳에 가까이 갈 방법이 없습니다. 어디 계시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의 주변 무리와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20:31 DKV
31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무리는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이 두 사람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잘 안 들렸을 수도 있고, 자기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하찮은 신분의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무리의 모습은 아이를 데려온 부모를 꾸짖었던 제자들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제자들의 모습 말입니다.
무리의 꾸짖음에 이 두 사람은 체면을 차리거나,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기죽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무리와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20:32 DKV
32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여러분, 기도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거나 무시한다고 기도를 멈춘 적은 없으십니까? “기도한다고 다 되나?”, “그런 기도가 응답되겠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 기도 응답을 포기한 적은 없으십니까? 세상이 뭐라고 할 때, 더욱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조롱할 때 더욱 크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침에, 우리의 부르짖음에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절대 모르는 척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더욱 기도하십시오.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응답을 모두 듣고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눈먼 두 사람의 외침을 가만히 보면 그들의 믿음의 고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밤에 조용히 찾아왔던 니고데모처럼 랍비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자 관리처럼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예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고칠 수 없는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으로 예수님으로 불렀습니다. 자기들의 문제를 정말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존재로서 예수님을 불었습니다. 바로 메시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구약에는 맹인이 눈을 뜬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적은 오실 메시아를 증명한 이적으로 예언되었을 뿐입니다.

에스겔 34:23–24 DKV
23 내가 그들 위에 한 목자, 곧 내 종 다윗을 세울 것이니 그가 그들을 먹일 것이다. 그가 그들을 먹이며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 왕이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했다.

이사야 35:5–6 DKV
5 그때 눈먼 사람의 눈이 열리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뚫릴 것이다. 

6 그때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하지 못하던 혀가 기뻐서 소리칠 것이다. 그렇다. 사막에서 물이 터지고 강물이 광야로 쏟아질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다윗의 자손으로 눈먼 사람의 눈을 고치실 수 있는 분, 메시아로서 주님을 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출애굽기 33:19 DKV
19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시편 기자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9: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41:10 여호와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시편 123:3 오 여호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눈먼 이 두 사람은 믿음으로 외친 것입니다. 분명한 믿음으로, 진심으로 믿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 믿음의 외침에, 그 믿음의 부르짖음에, 그 믿음의 진심 어린 기도에 주님은 응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32 DKV
32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주님은 그들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실 수 있으셨지만, 친히 그들의 눈에 손을 대어주셔서 그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34 DKV
34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곧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육의 눈이 먼 사람과 영의 눈이 먼 사람입니다. 육의 눈이 멀었지만, 영의 눈이 뜨인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히 찾았습니다. 예수님만 자기들의 유일한 희망로 여기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만났습니다.
영의 눈이 먼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을 의지하며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구원을 찾고, 세상에서 희망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영의 눈이 열리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아닌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전심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오직 주님께, 오직 주님께만 간구하며, 부르짖으며, 기도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고 승리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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