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택함을 입은 자가 되자
본문: 마태복음 22:10–14 DKV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마태복음 22:10–14 DKV
10 그래서 종들은 길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눈에 띄는 대로 사람들을 모두 모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결혼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됐다.
11 그런데 왕이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왔다가 거기 어떤 사람이 예복을 입고 있지 않는 것을 보고
12 물었다. ‘이보게 친구, 그대는 어떻게 결혼 예복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온 거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13 그러자 왕이 종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이와 같이 초대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셨습니다. 이에 가장 많이 화가 나는 사람들은 상인도 그랬겠지만,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고 물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기보다는 감정을 담아서 따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물음에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답하시고 나서 그들의 잘못된 행위와 회개하지 않은 모습에 비유를 통해 그들이 심판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가 마태복음 21장 28~32절까지 있는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해라.”라는 아버지 말씀에 한 명은 싫다고 했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가서 일하였고, 또 한 명은 가겠다고 말은 했으나 가지 않은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비유의 결론은 마태복음 21장 32절입니다.
마태복음 21:32 DKV
32 요한이 너희에게 의의 길을 보여 주려고 왔는데,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비유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1장 33-44절까지 말씀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났는데, 수확할 때가 가까이 와서 세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종들을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인의 아들마저 보냈으나, 오히려 그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주인이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과 이어지는 대답이 비유의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21:43 DKV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에게 줄 것이다.
두 번이나 비유를 듣고 나니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향한 말씀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께 화가 많이 쌓였는데, 말 폭탄까지 맞고 나니깐 속에서 더 열불이 났었습니다. 그런 상황 마지막 세 번째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기 아들의 결혼 잔치를 준비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미 초대장은 다 보냈었고 참석하겠다는 답을 받아서 그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실제 잔칫날이 다가오니 다시 한번 알림장을 종을 통해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겠다던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초대를 무시거나, 농사일로 또는 장사로 핑계를 삼았습니다. 어떤 이는 왕의 말을 대신 전하는 그 종을 붙잡고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의 초대를 무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일이었습니다. 왕의 종을 멸시하는 것은 전쟁하자는 표현과 같았습니다. 지금도 다른 나라에 있는 대사는 파견한 나라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 대사를 무시하는 행위는 그 나라를 무시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러니 왕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마태복음 22:7 DKV
7 격분한 왕은 자기 군대를 보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
잔치 음식이 준비되었는데, 그냥 버릴 수는 없고 아들의 결혼식을 안 할 수는 없을 테니 일단 사람들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9 DKV
9 너희는 길거리로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잔치에 오라고 초대하라.’
개역개정에는 네거리 길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διέξοδος’라는 단어는 교차로, 또는 도시의 출입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를 뜻합니다. 당연히 별의별 사람이 다 있겠지요. 그래서 종들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신분이 검증되지 않은 채 잔치에 오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업, 지위, 성품, 성격, 범죄 이력, 수상 경력 등 흔히 말하는 스펙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잔치 자리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0 DKV
10 그래서 종들은 길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눈에 띄는 대로 사람들을 모두 모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결혼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됐다.
처음 왕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꽤 지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왕의 잔치이니 그 격에 맞는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 국가 고위직이나 귀족들만 참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은혜로 신분에 상관없이, 국적도 상관없이, 개인의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속된 말로 “땡잡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교회 용어로 말하면, “은혜를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천국의 잔치 자리는 오직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모두 누리시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잔치 자리에 사람이 꽉 찼습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과 화려한 잔치 분위기에 주눅 든 사람들도 있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잔치 자리에 빠지지 않는 포도주에 긴장이 풀렸을 테니 분위기가 매우 시끌벅적할 것 같습니다.
잔치의 주인인 왕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는데, 눈에 거슬리는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22:11 DKV
11 그런데 왕이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왔다가 거기 어떤 사람이 예복을 입고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예복을 입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보통 장례식에는 검은색 계열의 옷을 결혼식에는 가급적 흰색 옷을 입는 것이 예절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드레스코드는 맞춰서 참석했는데, 유독 한 사람만 예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22:12 DKV
12 물었다. ‘이보게 친구, 그대는 어떻게 결혼 예복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온 거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목에서 그가 핑계조차 대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가 의도적으로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 가다 급하게 초대되어 의복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지 않을 것을 보면, 어쩌면 잔치 자리 들어오는 사람들에 왕은 입을 만한 옷도 준비해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당시 중동 사회에서는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옷을 마련해 주었음에도 입지 않고 잔치에 들어온 그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22:13 DKV
13 그러자 왕이 종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쫓겨났습니다. 잔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슬피 울며 이를 갈고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마태복음 22:14 DKV
14 이와 같이 초대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는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가 천국 잔치에 들어간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첫 번째 비유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로 포도원의 비유처럼 우리 신앙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천국 백성에게 합당한 예복을 입기를 원하십니다. 그 예복은 바로 우리의 변화된 삶입니다.
요한계시록 19:8 DKV
8 그녀는 밝고 깨끗한 고운 삼베를 입을 것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이 고운 삼베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들이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행실로 인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변화가 세상의 가치관으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된 삶, 그 삶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옳은 행실입니다.
에베소서 4:24 NKRV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로마서 13:14 NKRV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3:27 NKRV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큰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시며 살아감을 통해 오늘도 하루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