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17-22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오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마태복음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벌인 “세금 논쟁” 에 관한 본문입니다.
앞서 21장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권위 논쟁” 에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찾아와서 “세금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세금과 관련해 난해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게 바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하느냐 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5-16절을 읽겠습니다.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이 말씀을 보시면 성격이 다른 두 무리가 나옵니다. 15절에 “바리새인” 16절에 “헤롯 당원”이 나옵니다. 이 두 무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무리인데, 두 집단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유대 사회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로마 식민 통치 속에서 두 무리는 로마 정부에 대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민족주의자로서 로마의 통치와 세금 징수를 반대했습니다. 그렇다면 헤롯 당원들은 어떤가? 그들은 로마의 편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로마가 유대 사회를 치리하기 위해서, 헤롯 왕가에 대리 통치권을 주었는데, 이 헤롯왕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헤롯 당원이었습니다. 즉, 로마의 통치를 옹호하고 심지어 세리의 임무를 맡아가며 로마의 세금 징수를 찬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그룹은 서로 섞일 수 없는 그룹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담합을 하게 됩니다. 16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함께 모였을까요? 이유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기적들로 사람들을 몰고 다녔으므로 아마 유대 종교 지도자나 로마 정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예수님은 기존의 유대 사회 질서와 체제, 기득권을 위협하는 신흥세력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담함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예수님을 음해하려고 했던가? 15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말에 있어 실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 혀를 제어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이런 말씀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에 있어 실수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 두 집단은 예수님의 말실수를 잡아내어 그걸로 꼬투리 잡아 곤경에 빠트리려 계획했던 것입니다. 이런 악한 속셈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교묘한지, 악한 꾀는 숨기고 아주 예의바르게 존경하는 척하면서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게 16절입니다.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선생님,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등등 예수님을 한껏 치켜세워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입술만 그렇게 가장할 뿐,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말에 헛점을 보이면 그걸 갖고 꼬투리잡아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한 속셈을 갖고 주님께 어떤 질문을 던졌습니까? 그게 바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17절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여기서 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로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칩니까 바치지 않습니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하면서 평범한 질문처럼 물어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떻게 대답해도 문제가 되게끔 덫을 놓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질문은 갑자기 생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유대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하는 문제였습니다. 로마 정부가 식민 통치하는 나라에 남자 14세, 여자 12세 이상 65세까지 인두세를 부과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 사이에선 “세를 내야 한다.” 또는 “아니다 내면 안 된다.” 의견들이 충돌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하느냐!’ 며 반대했습니다. 세금을 낸다는 건 로마 황제를 하나님처럼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결코 납세를 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한편 헤롯당은 어떻습니까? 로마의 편에 붙어 있는 파로서 당연히 로마가 잘되어야 하고, 로마가 시키는 대로 세금을 바쳐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입장차이를 갖고 있던 두 파가 예수님께 와서 세금 문제를 던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담합했습니까?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고 예수님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 상황을 끌고 가려고 했을까요?
만약에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바리새인들은 반발할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세를 낸다는 건 황제를 신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납세해야 한다는 건 하나님 아닌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겠다고 한 것이므로 예수님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만약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헤롯 당원들이 반발하고 고소할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를 따르지 않고 반란을 꾀하자는 것이냐 이렇게 몰고 갈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덫에 걸리게끔 만든 질문이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이 대목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신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의 간사한 모습을 보면서, 마귀의 실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귀는 마치 양의 옷을 입고 다가온 늑대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는 악한 마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야 할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마 악한 마귀는 죄를 무기 삼아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떠올리며 우리를 참소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신다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 함께 하시며 사랑한다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대적하면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두 무리의 악한 속셈과 간교를 아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여기서 외식은 진실을 감춘 채 겉으로 꾸미고 가장한다는 것인데, 주님이 지적하신대로 그들은 속으로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입술로는 존경할 만한 선생님 선생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외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진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에게 질문에 대해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19절을 봅니다.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먼저 주님은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말씀하십니다. 로마의 화폐는 데나리온으로 은화였는데, 그것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 주화에는 로마 황제의 형상이 있었는데, 로마의 속국은 이 주화로 납세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보여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0절입니다.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당시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형상과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황제의 통치를 확실히 하고자 함과 더불어 신으로 숭배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동전 속 형상과 글은 누구의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가이사의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제 여기서 예수님은 그 대답에 기초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21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여기에서 예수님의 뛰어난 지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그에 따라 바리새파에서나 헤롯당원에서나 어디 쪽에서나 반발이 튀어나올 수 있는데,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가이사에게 바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헤롯 당원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 없습니다. 또 바리새파 입장에서 볼 때에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아닌 로마 황제에게 세를 내냐!’ 했었는데, “가이사건 가이사에게 주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자.” 하니까, 딱히 반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의 놀라운 지혜 앞에 꼼짝 못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22절입니다.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예수님의 이와 같은 지혜가 저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그 분의 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지혜로워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지혜가 필요합니까? 세상은 우리를 박해하려 하고, 미워하며 간계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했듯이 우리에게도 박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의 간계를 분별하고 세상 속에서 승리하려면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되기를 기도하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1장 15절에 보니, 주님이 대적이 대항할 수 없도록 구변과 지혜를 주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이 말씀대로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주님의 지혜로 세상을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말씀을 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물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이며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이 땅의 나라와 정부에만 매여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질서와 제도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 땅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과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 땅의 질서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질서대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