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6장 4-7절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협박하다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36:4 랍사게가 그들에게 말했다. “히스기야에게 전하라. ‘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엇을 믿고 있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냐?
36:5 네가 전략과 군사력을 갖추었다고 큰소리만 탕탕 치는데, 다 헛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네가 지금 무엇을 믿고 내게 반항하는 것이냐?
36:6 이제 보아라. 네가 이집트를 믿고 있는데 이집트는 뚝 부러진 갈대 지팡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믿다가는 사람의 손이나 찔려서 상처만 날 뿐이다! 이집트 왕 바로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36:7 그리고 너는 내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는 히스기야 너는 누구냐?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너희가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해야 한다면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없애 버린 그 주인공이 아니냐?
오늘 이 시간에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협박하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이사야서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36장부터 39장까지는, 남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 통치 시기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먼저 36장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였던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같은 경우는, 산헤립의 군대 장관이었던 랍사게가 유다 사절단 앞에서 쏟아놓았던 악한 말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하나님이 과연 너희를 보호하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믿고 앗수르와 산헤립 왕 앞에서 반항하느냐? 너희는 살 생각하지 말아라!” 이런 식으로 악한 말들을 쏟아 놓는 것입니다. 산헤립 왕의 신하였던 랍사게는 허세를 부리며 자기네가 하나님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고 거만하게 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36장의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6:1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 모든 성읍들을 점령했다.
36:2 그때 앗시리아 왕은 라기스에서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주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히스기야 왕에게 보냈다. 랍사게가 윗저수지의 수로, 곧 ‘세탁하는 사람의 밭’ 길가에 멈춰 섰을 때
36:3 왕궁 관리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 아삽의 아들 요아가 그를 맞으러 나아왔다.
1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제 14년에 앗수르가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1차에 이어 2차 침공을 했는데, 유다의 대부분이 이미 함락되었고, 예루살렘 성만이 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포위한채 갖은 악한 말을 퍼부으면서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2,3절을 보니까, 앗수르 산헤립 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전 먼저 라기스를 점령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자기 신하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붙여주면서 예루살렘으로까지 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남유다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라기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45키로 지점에 있던 곳으로, 애굽으로 가는 교통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유다 입장에서는 애굽을 의지하러 갈 길이 막혔던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윗저수지의 수로, 곧‘세탁하는 사람의 밭’ 길가에 멈춰 섰을 때..” 라고 했는데, 랍사게가 멈춰섰던 윗저수지의 수로는 무엇이냐면, 예루살렘 밖 골짜기에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물이 들어오도록 만든 수도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히스기야 왕은 위급한 때를 대비해서 바깥에서 물을 공급 받기 위해 예루살렘 안과 연결된 수도관을 마련했는데, 마침 랍사게는 그 곳의 위치를 이미 파악해서 그 곳을 점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랍사게는 예루살렘의 물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랍사게의 이와 같은 공격적인 모습에 히스기야 왕은 사절단을 보냈다 합니다. 3절에 나온대로,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마 이 셋은 랍사게와 평화롭게 협상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랍사게는 매우 거만한 태도로 수많은 신성모독적인 발언과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애굽 군대도 앗수르 군대 앞에 적수가 될 수 없다는 둥, 하나님도 앗수르 군대로부터 예루살렘을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하며, 심지어 예루살렘이 함락시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본문 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36:4 랍사게가 그들에게 말했다.“히스기야에게 전하라.‘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엇을 믿고 있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냐?
랍사게는 아주 거만하게 말합니다. “네가 무엇을 믿고 있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냐?” 랍사게는 앗수르에 굴복하지 않는 히스기야 왕의 태도를 꼭 집어서 비아냥 거리는 것입니다. 네가 잘난 것도 없으면서 왜 우리에게 항복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한 데에는,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게다가 히스기야도 본래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바쳐가며 굴복적인 태도를 보였었는데, 지금은 히스기야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랍사게 입장에선 가소롭기도 하고,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5절도 읽어봅니다.
36:5 네가 전략과 군사력을 갖추었다고 큰소리만 탕탕 치는데, 다 헛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네가 지금 무엇을 믿고 내게 반항하는 것이냐?
랍사게는 계속해서 사절단과 히스기야 왕을 향해 비웃고 조롱하며 협박합니다. 남유다 너희들의 전략과 군사력은 앗수르 군대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갖은 모욕적인 말과 협박에도 랍사게와 앗수르 군대 앞에서 뒤로 물러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전에는 애굽을 의지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려 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다른 방도도 없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강력한 위협과 힘 앞에 뒤로 물러감 없이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강함을 의지할 때 더 이상 내 힘과 그 어떤 다른 구원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6절입니다.
36:6 이제 보아라. 네가 이집트를 믿고 있는데 이집트는 뚝 부러진 갈대 지팡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믿다가는 사람의 손이나 찔려서 상처만 날 뿐이다! 이집트 왕 바로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랍사게는 조롱과 비아냥으로 히스기야 왕과 유다 사절단을 낙심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자꾸 남유다의 마음을 긁어놓고 요동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한 말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더러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에 옳은 말을 하나 합니다. 그게 뭡니까? 애굽을 의지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보아라. 네가 이집트를 믿고 있는데 이집트는 뚝 부러진 갈대 지팡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믿다가는 사람의 손이나 찔려서 상처만 날 뿐이다!”
아시겠지만, 지팡이는 튼튼해야 합니다.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건, 가벼운 사람이건 잘 지탱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하거늘, 갈대로 된 지팡이는 얼마나 약할까요? 갈대는 줄기 속이 비어서 이리 휘고 저리 휘는 특성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갈대로 만든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의지할 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애굽이 바로 갈대 지팡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러진 갈대 지팡이와 같아서 유다 입장에서는 결코 의지할 대상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남유다가 애굽을 붙잡지 못하게 하며, 항복시킬 목적으로 이와 같이 애굽을 내려 깎으면서 말했던 것인데, 비록 악인의 말이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사야 30장에도 나왔는데, 하나님도 애굽을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30장 2-3절만 읽어보겠습니다.
사30:2 내게 묻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바로의 보호를 피난처로 삼고 이집트의 그늘 아래 쉴 곳을 찾는구나.
사30:3 그러나 바로의 보호가 도리어 너희에게 부끄러움이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너희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실제로 남유다에는 애굽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친애굽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도 애굽과의 동맹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길 바라시며, 애굽의 보호는 도리어 부끄러움과 치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우리를 구원할 자를 바라봐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과 같은 상한 갈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찾는 것인 당장은 쉽고 힘이 되어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진정한 구원입니까?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죄와 저주, 이 세상에서 만나는 각종 장애와 어려움들, 그 어떤 대적과 환난에도 우리를 한결같이 도우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선포해야 할 줄 믿습니다.
7절입니다.
36:7 그리고 너는 내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는 히스기야 너는 누구냐?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너희가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해야 한다면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없애 버린 그 주인공이 아니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마치 랍사게와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어 7절을 보시면, 랍사게는 무슨 말을 합니까? 앞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소용이 없다며 항복을 요구했었는데, 이젠 하나님을 의지해도 소용이 없다며 신성모독적인 말을 합니다. 랍사게가 했던 말 중에 그나마 들을 만한 말은 애굽을 비롯한 이 세상의 힘은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아니란 것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헛되다고 말하며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가 유다 땅에서 각종 산당과 제단을 없앴던 일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는 히스기야 너는 누구냐?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너희가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해야 한다면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없애 버린 그 주인공이 아니냐?”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말했던 것처럼 그랬을까? 실제로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말한 것처럼 유다 땅의 모든 이방 산당과 제단을 없앴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만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관련말씀 열왕기하 18장 3,4절입니다.
왕하18:3 히스기야는 자기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했습니다.
왕하18:4 그는 산당들을 없애고 주상들을 깨 버렸으며 아세라 상을 찍고 모세가 만든 청동뱀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그때까지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것을 느후스단이라 부르면서 분향했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이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랍사게가 히스기야의 이 일을 들먹이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유일신 아닌 다신교적인 믿음을 갖고 있던 랍사게 입장에서 볼 때 히스기야가 다른 산당과 제단을 훼파하고 유일하신 여호와를 섬기자고 했던 것이 못마땅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던 히스기야가 잘못한 것입니까? 히스기야가 패배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을 보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앗수르 군대의 18만 5천명을 죽이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하나님을 바로 믿는 신앙이 세워지는 곳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가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가정과 교회와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가 있을 줄 믿습니다. 세상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뭐가 되겠느냐? 박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싸워주시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