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7장 1-4절
바벨론의 파멸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47:1 “처녀 딸 바벨론아, 땅바닥에 앉아라. 딸 갈대아야, 보좌가 없으니 땅바닥에나 앉아라.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너를 보고 친절하고 우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47:2 맷돌을 가져다가 밀이나 빻아라. 네 가리개를 벗고 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가거라.
47:3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곳도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앙갚음을 할 것이니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47:4 우리의 구원자,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바벨론의 파멸”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이사야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는 바벨론 멸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토록 강성했던 바벨론이 멸망하리라는 걸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멸망하고 수치를 당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7:1 “처녀 딸 바벨론아, 땅바닥에 앉아라. 딸 갈대아야, 보좌가 없으니 땅바닥에나 앉아라.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너를 보고 친절하고 우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을 부를 때 “처녀 딸 바벨론아..” 라고 부릅니다. 바벨론을 향해 ‘처녀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같은 수식어를 붙었을까.. 관용적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딸’은 도시나 국가, 백성 등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던 관용적인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처녀 딸이란 표현은 뭔가 약하고 유한 이미지의 표현으로써, 결국 바벨론이 약하여 패망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딸 갈대아야”라고 했는데, 갈대아 역시 바벨론 제국을 가리킵니다. 갈대아는 정확하게는 바벨론 제국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성경에서는 바벨론 제국 전체를 호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땅을 갈대아 땅이라 하고, 바벨론 군대를 갈대아 군대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향해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땅바닥에 앉아라…보좌가 없으니 땅바닥에나 앉아라.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너를 보고 친절하고 우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보좌가 없다고 합니다. 이 구절은 바벨론 왕조의 권세가 쇠하여지고 망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땅바닥에 앉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 역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낮추시며 망하게 하겠다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름답고 고운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바벨론을 보며 그들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까요? 벨사살이 통치하던 B.C539년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침공하였고, 바벨론은 함락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바벨론이 패망하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이사야 47장 6-8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7:6 내가 내 백성에게 화를 내어 내 기업을 더럽히고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는데 너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다뤘다. 나이 든 사람에게도 엄청난 멍에를 지웠다.
사 47:7 너는 ‘언제까지나 내가 여왕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일은 속에 담아 두지도 않았고 장차 일어날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 47:8 그러므로 이제 잘 들어라. 편안하게 빈둥거리면서 ‘나 말고는 아무도 없고 내가 최고다. 나는 결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속으로 말하는 너 음탕한 족속아.
바벨론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습니까? 교만한 태도입니다. 그들이 했던 말을 보면, 7절에 “언제까지나 내가 여왕이다!” 라고 했고, 8절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고 내가 최고다!” 이렇게 교만한 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만한 바벨론을 멸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벨론이 교만할 이유가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강하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징계의 도구와 회초리로 쓰고자, 바벨론을 강하게 하셨던 것이지 그들 스스로 강하게 된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여왕이라 칭하며 높이고 더욱 교만했습니다. 또한 6절에 “너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다뤘다..” 나온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대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보다 더 자신을 높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고 낮추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은 패망의 선봉, 지름길이란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우리 삶 속에 교만이 틈타지 못하도록 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형통하거나 강성하게 될 때, “나의 힘으로 됐다. 내가 잘나서 됐다.”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교만하게 되어 나를 높이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시들시들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믿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늘 은혜를 얻는 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나의 힘 삼아 오직 하나님만 붙드시는 기도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2절을 보겠습니다.
47:2 맷돌을 가져다가 밀이나 빻아라. 네 가리개를 벗고 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가거라.
바벨론을 향해 말씀하기를.. 먼저“맷돌을 가져가다가 밀을 빻으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맷돌을 갈아 곡식 가루를 내는 일은 주로 노예 혹은 감옥에 있는 죄수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삼손도 감옥에 갇혔을 때 맷돌을 돌리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그 일을 하라 하십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벨론은 스스로를 여왕이라 하며 자신을 치켜 세우지만, 결국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종처럼 낮아질 것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 “가리개를 벗는다”는 것도 신분의 하락을 의미하는데, 고대 근동에서 상류층 여성들은 얼굴에 가리개를 썼지만, 그에 반해 노예들은 가리개를 벗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바벨론의 상황이 안좋아질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또..“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를 드러내고” 이 말씀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의미하는 말씀으로서, 바벨론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일반 여인들은 공중 앞에서 다리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은 일반 여인들과 달리 다리를 드러내며 벗겨지게 될 것입니다. 즉,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또, “강을 건넌다.” 는 역시 패망한 바벨론을 보여주고 있는데, 추방당할 때 또는 패배하여 도망갈 때 강을 건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2절에서.. 바벨론이 겪게 될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어지는 3절에서도 바벨론의 멸망과 수치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읽어봅니다.
사47:3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곳도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앙갚음을 할 것이니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보시면, 몸이 벌거벗겨지고, 심지어 부끄러운 곳도 가려지지 않고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 역시 바벨론의 멸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겨진다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2-3절 속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심판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3절 하반절에“내가 앙갚음을 할 것이니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 누구도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봐주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늘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종하며 맘대로 살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살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시고, 또 그 행한 대로 갚으신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목전에서 산다 생각하시고 오직 주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문 3절을 다시 보면,“내가 앙갚음을 할 것이니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심판이라 하지 말씀하지 않고, 앙갚음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 대한 복수와 앙갚음입니까?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학대한 것에 대해 고스란히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에 대해 결코 간과하지 않겠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진리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비록 자기 백성을 징계 속에 바벨론에 맡겨두셨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다시 자기 백성이 언약을 회복하고 주께 돌아오는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 안에 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4절입니다.
47:4 우리의 구원자,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다.
1-3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바벨론 멸망에 대해 선언하였는데, 그 다음 바로 4절에는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은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또 거룩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왜 여기서 구원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 나올까.
그 이유는 바벨론을 멸망하는 것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분이라 나온 건,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으로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거룩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무엇보다 교만하면 안 되겠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은 자기의 쓰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의 강성함에 취해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하나님 자리까지 스스로를 높였던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높이며 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은 망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늘 하나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했습니다. 성도님들 모두 겸손한 삶으로 나아가 큰 은혜를 경험하고 승리의 삶으로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