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본문: 이사야 50:4–9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이사야 50:4–9 DKV
4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5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배반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려 가 버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사람들에게 내 등을 내주었고 내 수염을 뽑는 사람들에게 내 뺨을 내주었다. 조롱하고 침을 뱉는데도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조금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굳게 하였다. 따라서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8 나를 의롭다고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를 고소하겠는가? 우리 함께 법정에 가 보자! 누가 나를 상대로 고소했느냐? 내게 가까이 와 보라.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두고 죄가 있다 하느냐? 그들은 모두 옷처럼 낡아져서 좀에게 먹힐 것이다.
이사야에 3개의 종의 시, 종의 노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42:1-13, 두 번째는 49:1-13 그리고 오늘 본문 50:4-11까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종의 노래이자 종의 고백은 자기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사야 50:4-11절은 시작되는 단어, “주 여호와께서”로 4개의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4절, 5-6절, 7-8절, 9-11절입니다.
4절,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5절,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7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9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주 여호와”가 오늘 본문에서 핵심 단어입니다. 자기 삶의 중심이 주 하나님께 있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입니까? 원어로 보면 “주 하나님”(אֲדֹנָ֤י יְהוִה = 아도나이 야훼)는 1인칭으로 나의 주 하나님,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저 주변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에 따라 종교에 따라 고백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에 쓰여 있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주인, 나의 왕으로 분명하게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내 삶의 중심이고, 내 삶의 인도자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매뉴얼이 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러분이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맞습니까? 그렇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이 종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나의 주, 나의 주인, 나의 왕으로 고백한다면 우리 또한 50장의 종의 노래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또 그것으로 그 종이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는지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위로하는 삶
이사야 50:4 DKV
4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주 하나님께서 종에게 혀를 주셨는데, 가르치는 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혀를 통해 어떻게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를 알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가르치는 혀에서 ‘가르친다’는 단어를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개역개정은 학자들의 혀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게만 보면 남을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가르치는 말로 위로로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낙타가 바늘귀에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 잘잘못을 가르치듯 말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 그 말로 위로를 받겠습니까?
“가르치는”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가 같은 절에 사용되었습니다. 개역개정을 보면 학자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이사야 50:4 NKRV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학자들의 혀 = 학자들 같이 (개역개정)
가르치는 = 제자를 대하듯 (우리말)
of disciples = as a disciple (NASB)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승에게 배우는 제자입니다. 제자의 혀를 통해서 어떤 말이 나오겠습니까? 스승에게 배운 대로 말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에 지친 사람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는 목마른 자의 입술에 물을 적시는 수준의 위로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솟아나는 샘물”의 위로가 됩니다.
지친 자를 되살리고 회복시키는 위로의 삶을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뒤돌아 서지 않는 삶
이사야 50:5–6 DKV
5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배반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려 가 버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사람들에게 내 등을 내주었고 내 수염을 뽑는 사람들에게 내 뺨을 내주었다. 조롱하고 침을 뱉는데도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1절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뒤돌아 서지 않겠네
2절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3절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내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사야 50:5 DKV
5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배반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려 가 버리지도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했다고 고백합니까? 이어지는 6절 말씀,
이사야 50:6 DKV
6 나는 나를 때리는 사람들에게 내 등을 내주었고 내 수염을 뽑는 사람들에게 내 뺨을 내주었다. 조롱하고 침을 뱉는데도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때리고, 내 수염을 뽑고, 내 뺨을 때리고, 조롱하고 침을 뱉는데도,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배반하지도 않았고, 뒤돌아 서지 않고, 나의 주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니 그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를 열고 뭘 하셨겠습니까? 말씀을 해주십니다.
다윗의 기도 중에도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사무엘하 7:27 NKRV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 귀를 열고 말씀하셨던 것을 붙잡고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세상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나를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뒤돌아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제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정죄함을 당하지 않는 삶입니다.
이사야 50:7–9 DKV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조금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굳게 하였다. 따라서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8 나를 의롭다고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를 고소하겠는가? 우리 함께 법정에 가 보자! 누가 나를 상대로 고소했느냐? 내게 가까이 와 보라.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두고 죄가 있다 하느냐? 그들은 모두 옷처럼 낡아져서 좀에게 먹힐 것이다.
실제 우리 삶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수치스러울 수 있습니다. 6절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에 나온 죄인을 처벌할 때 때리기도 하고 침을 맞을 수도 있지만, 수염을 뽑는 일을 당하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매우 수치스러운 상황입니다.
신앙생활을 정말로 제대로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미친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미쳐야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을 죄가 있다 정죄할 수 없을뿐더러, 세상에서 당한 수치가 오히려 상급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3–35 DKV
33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의롭다고 인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34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죽었을 뿐 아니라 살리심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배고픔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겠습니까?
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데, 감히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귀를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4절 말씀처럼 아침마다 여러분의 귀를 깨워주셔서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여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친 사람을 위로하는 삶,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삶,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참된 신앙의 삶을 오늘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