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은혜와 긍휼과 평강
본문: 디모데전서 1:1–2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디모데전서 1:1–2 DKV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네게 베푸시기를 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가 쓰인 시기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교여행 중에 썼다”, 둘째, “선교 후 로마 감옥에서 썼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죽은 뒤에 쓰였다.”입니다.
이 중 두번째인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썼다는 견해를 선호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 서신은 그저 안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 중이었는데,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젊었다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12 DKV
12 네가 젊다고 해서 누구라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대해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어라.
'젊음', 개역개정에서는 '연소함'이라고 번역된 νεότης(네오테스)라는 단어가 당시 풍습에 따라 40까지는 쓰인 것으로 보아 디모데는 30대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는 아니지었지만, 디모데는 바울이 자기에게 부탁한 목회 현장에 대해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에게는 아들이자, 목회 후임자이자, 사역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니, 그 내용에 얼마나 귀한 말씀이 들어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 서신의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진정으로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누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디모데전서 1:1 DKV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은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자기를 소개합니다. 이미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디모데에게 굳이 자기소개를 할 필요는 없을테니, 자기소개라기 보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자기는 사도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 구세주,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소망이신 분,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고백을 굳이 인사말에 썼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당시 바울의 상황과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고백은 목숨을 걸고 말하는 고백입니다.
왜 그렇죠? 로마 시대 당시의 구원자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혹시 마가복음 설교 때 들으신 것을 기억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도 당시 로마 황제에 대해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에 관한 비문이 있는데 이런 문구로 시작합니다. “시저 아우구스투스의 복음의 시작이라.” 너무도 익숙한 문구입니다.
마가복음 1:1 NKRV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기쁜 소식, 즉 복음은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오는 평화에 대한 기쁜 소식이었고, 그렇기에 당시 구주, 구세주, 구원자(σωτήρ)라는 단어는 황제를 향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구원자는 하나님, 바울에게 있어서 소망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을 담아 편지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구원자는 누구십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소망은 누구십니까?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디모데전서 1:2 DKV
2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네게 베푸시기를 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참 아들이었습니다. 친 아들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농담처럼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외모라든지, 질병이라든지, 사명때문이라든지해서 말이죠.
중요한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아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아들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1 NKRV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빌립보서 2:22 NKRV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참 아들이라는 표현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상속자의 의미가 강합니다. 친 아들이라고 해서 다 상속자는 아니다. 그래서 친 아들이 참 아들이기도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친아들이건 사생아건, 또는 입양했든 정말로 자신의 뒤를 이어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를 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인사말이자 축복을 빌어줍니다. 세 가지, 은혜와 긍휼과 평강입니다.
디모데전서 1:2 DKV
2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네게 베푸시기를 빈다.
"은혜와 평강"은 거의 모든 서신서에 들어가는 인사말입니다.
로마서 1:7 DKV
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고린도전서 1:3 DKV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은혜라는 헬라어 ‘카리스’라는 단어는 인사말이라는 헬라어 ‘카이레인’ 이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또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 사람들의 인사말인 ‘샬롬’의 뜻이기도 하니 일반적으로 서신서에 등장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긍휼이라는 단어까지 사용된 서신서는 디모데전후와 요한일서, 유다서까지 4개 서신서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은혜와 평강도 마찬가지이지만, 긍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자비를 말합니다.
세상이 주는 은혜와 평강, 긍휼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제한적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초보은이라고 해서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 기대 이상의 은혜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속 받을 수 있습니까? 기대한 만큼 받을 수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평화는 어떻습니까? 평화라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팍스 로마나를 말하는데, 전쟁을 통해 이루어진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입니까? 그 로마 제국이 지금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잠시일 뿐입니다.
사람이 베푸는 자비, 긍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되면 베풀 수 있으나,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면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로마서 5:7 DKV
7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과감히 죽는 사람은 간혹 있기는 합니다.
의인을 위해서, 또는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까지 버려가며 긍휼을 베푸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5:8 DKV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사랑입니다. 그 긍휼과 자비,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 그리고 오직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주셔서 이루신 평화, 참된 평화. 그것이 디모데에게 있기를 위해 바울을 축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구세주로 모시고 살아가십니까? 또 무엇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들에게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우리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