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
본문: 로마서 8:11-17
찬송가: 488장 이 몸에 소망 무언가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사망의 몸에서 소망이 있는 몸으로
교회를 다니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곤합니다. “내가 죽어야 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나는 교회에 살려고 나왔는데? 왜 죽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사셨는데 구원받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죽음의 공포가 떠나질 않는 것을 경험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 대한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선물합니다. 질병의 문제가 찾아올때마다 의심합니다. 사업이 흔들리고, 자녀들이 안되고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면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죽을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살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사망의 몸입니다.
어두움이 몰려오는 밤이면 우리는 잠을 잡니다. 자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놀랍게도 죄를 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은 사람은 다시 눈을 뜨지 않는 다는 것이고 자는 사람은 다시 눈을 뜬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자기 전까지 죄를 하나도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았다고 누가 다짐하며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눈만 뜨면 죄를 짖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기적으로 살아가는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니 우리 몸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1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성령이 우리의 죽을 몸에 거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여러분,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는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이제는 죽을 몸, 사망에 매여있는 몸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소망의 몸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몸에 소망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그런 우리에게 더욱 권면합니다. 12-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빚진 자라고 말하면서 육신에 거한다고 “육신의 소욕 대로 살아가면 안된다”“육신에 지지말라”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육신에 있다고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이것이 바로 교회에서 말하는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선한 말이 아니라, 항상 공격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불만과 불평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항상 그런 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사역과 감사와 거리가 멀고 은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닙니다. 예수전도단의 훈련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 드린 예배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는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데 누가 예배의 주인입니까? 누가 은혜를 부어주십니까?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의 영이 예배와 교회를 병들게 한다면, 우리는 아직 사망의 몸에 있다는 것입니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육신이 편하면 영이 망가집니다. 여러분, 혹시 편하게 신앙생활 하려는 것 때문에, 혹은 예배가, 교회가 이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교회에 어떤 생명력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판단과 정죄하기에 성실하신 분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조금 몸이 불편해도 함께 섬기며 예수님과 함께 죄에는 죽고 예수로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아빠 아버지
예수님의 피의 공로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소망의 몸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14-16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오늘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함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율법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율법을 통해서 성도를 정죄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신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종의 영에서 양자의 영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Αββα ὁ πατήρ)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신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오늘도 기도로 승리하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영광을 받기 위하여
마지막 절입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이 어떤 고난이든 우리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결코 실패와 패배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난이든 잠시 잠깐의 고난일 뿐입니다.
여러분, 삶의 문제가 있으십니까? 어떤 고난과 고통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고난과 고통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가 있으십니까? 사업의 문제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사단이 우리를 어두움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승리가 우리의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