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을 통한 변화
본문: 사도행전 3장 1-10절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 말씀은 초대 교회의 첫번째 기적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힘 입어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 읽겠습니다.
[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제 구시는 오후 3시 입니다. 이는 보통 예루살렘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즉 특별한 일정이 아닌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원래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들의 삶의 의미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미가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을 받아 삶이 변화되 사람은 그들뿐만이 아니였습니다. 2~3절 읽겠습니다.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앉은뱅이가 성전에 오는 이유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성전에 나와 하루를 살아가기에 필요한 물질만을 구걸하던 자였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성전에 기도하러 오는 순례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동전이였습니다. 그렇게 삶을 연명하는 그에게는 영혼의 갈망을 느낄 여유 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또한 앉은뱅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교회에 나와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앉은뱅이와 같이 물질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교회에 나오는 목적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교회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나의 목적에 맞추어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같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이러한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은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들은 관심이 있는 곳에 쉽게 주목합니다. 옷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 예쁜 옷에 주목합니다. 차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 멋진 차에 주목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에 중심이 되는 곳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보면 앉은뱅이는 날때부터 걷지 못하여 사람들이 성전 앞으로 옮기어 구걸을 하게 했습니다. 즉 이번이 처음으로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런 앉은뱅이를 제자들은 이번에 주목한 것 입니다. 이제는 성령을 받아 자신의 중심으로 움직이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그들의 시선이 예수님의 시선이 되어 앉은뱅이를 주목하기 시작하며 주님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된것 입니다. 그리고 앉은뱅이에거 자신들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들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3~4절 읽겠습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우리나라 속담에 "개에게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속뜻으로는 사람이 무엇을 지나치게 좋아하다 보면 그런 것만 남달리 눈에 쏙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에 들어와야하는 것 주목해야하는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이 이제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의 사역을 이루어가시길 소망합니다.
이들이 바라보라고 한 것은 육적인 시각을 통하여 바라보라고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앉은뱅이의 육적인 장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장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함을 파악하고 있던 것 입니다. 앉은뱅이의 최대 관심사는 동전 몇닢이였습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하며 자신들을 통하여 영적인 성령님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자신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금과 은이 없지만 그 무엇보다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입니다. 5~6절 읽겠습니다.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그들에게는 금과 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귀한 구원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자신을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과 은보다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여 줄 수있던 이유는 금과 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금과 은을 줄는 것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을 줄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을 통하여 변화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이입어 앉은뱅이를 치유합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 합니다. 베드로의 치유의 이적은 앉은뱅이를 단순히 일으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앉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하루의 필요한 물질을 구하던 자가 이제는 찬양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육신의 질병이 치유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영혼의 질병까지 치유 받았습니다. 희망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자가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본문 7~10절까지 읽겠습니다.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성도 여러분 앉은뱅이와 같이 하루 하루 세상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지않은신가요? 나의 삶의 중심이 나의 관심사가 세상이 되어 교회를 나오는 것이 구원이 아닌 동전 몇닢을 얻기 위해 나오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혹은 앉은뱅이를 주목하지 못하고 나의 일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제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동전 몇닢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히고 나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고기를 낚는 베드로와 요한이 이제는 사람을 낚는 자들이 된 것 처럼 세상을 구하는 자가 아닌 사람을 구원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