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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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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장 1-9절.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23년 8월 23일, 서정원 부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3-08-23 00:25    조회 1,199    댓글 0  
 
에스겔 19장 1-9절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은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 이와 같은 제목으로 에스겔서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한 암사자에게서 난 두 젊은 사자가 나옵니다. 여기서 두 사자는 유다 말기의 두 왕을 가키키며, 각각 제 17대 왕 여호아하스, 19대 왕 여호야긴을 가리킨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왕은 끝이 좋지 않으며 몰락하게 되었는데, 본문 속에는 두 왕을 대상으로 한 애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가며 은혜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입니다. 

[겔19: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애가를 지으라고 합니다.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단순히 어떤 지도자, 고관을 말함이 아니라, 유다 말기의 왕들을 위한 애가입니다. 

먼저 1-4절까지는 유다 17대 왕 여호아하스에 대한 애가로 봅니다. 또 5-9절까지는 19대 왕 여호야긴으로 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10-14절까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 20대 왕 시드기야 왕에 대한 애가로서, 19장에서는 유다 말기의 왕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중 세 왕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대한 애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유다 민족이 의지하는 왕들을 통해서는 아무 희망도 없음을 백성들이 깨달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려는 뜻이 있겠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겔19: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보시면, ‘암사자’가 나오고 그가 ‘젊은 사자’ 새끼를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4절에는 그 젊은 사자가 어떻게 행하는지 나옵니다. 3-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겔19:3-4]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보시면, 암사자가 길렀던 젊은 사자가 사람을 물어뜯고 사람을 삼키고 잡아 먹습니다. 굉장히 포악한 모습니다. 그러자 이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 젊은 사자를 잡기 위한 함정을 파고 결국 갈고리로 꿰서 애굽 땅으로 끌고 갔습니다. 

여러분,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암사자는 누구를 가리키고, 암사자가 길렀던 젊은 사자는 누구며, 애굽으로 끌려 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암사자는 유다라 할 수 있고, 젊은 사자는 앞서 언급한대로 유다의 왕 17대 여호아하스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는 3절에 나온 젊은 사자처럼 매우 포악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켰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이건 여호아하스가 포악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걸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성경말씀이 열왕기하 23장에도 기록되었는데,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3장 31-32절입니다. 

[왕하23:31-32]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그는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23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행하였다고 합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살고, 폭정으로 사람들을 압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 기간은 예루살렘에서 석 달이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짧은 기간만 왕 위에 있었을까. 아까 본문 4절에 젊은 사자를 갈고리로 꿰어 애굽으로 끌고 갔다는 말씀처럼, B.C609년 애굽의 왕 바로 느고의 침략을 받아 포로가 되었고 애굽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이 있는 열왕기하 32장 33-34절을 읽어봅니다.

[왕하32:33-34]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아하스는 애굽에 잡혀갔고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아하스의 최후였습니다. 3개월만에 폐위당하고 애굽으로 끌껴가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유다의 왕이란 어떤 위치인가요? 너무 당연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옳은 데로 인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아하스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 사명과 본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왕위에 앉은 것은 단순히 자기의 혈통과 능력 때문이 아니고, 자기권세를 드러내려 세운 것도 아니건만, 오직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게끔 해야 했건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결과가 이어졌습니까? 3개월만에 폐위당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왕일지라도 어김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비록 여호아하스만큼의 높은 위치와 큰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사명과 본분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께 어떤 직분과 은혜를 받았는가? 그리고 그 본분과 사명을 따라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돌이켜보길 바랍니다. 그래서 만약 주 앞에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불순종할 것은 돌이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다음 5절부터 9절까지는 남유다의 19대 왕 여호야긴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겠습니다. 5절입니다.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5절에서도 암사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암사자가 뭔가를 소망하고 기다렸지만 소망이 이뤄지지 않고 끊어졌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이게 무슨 말일까? 앞서 암사자는 남유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했는데, 아마 유다 민족은 자신들의 재건과 부흥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애굽에 사로 잡혀 갔던 여호아하스 왕이 되돌아오기를 소망했을 수 있고, 애굽 왕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데려가며 요시야의 둘째 아들(여호아하스의 형)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워 놨었는데, 여호야김이 나라를 안정화시키길 소망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하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 또 다른 젊은 사자가 등장합니다. 또 다른 유다의 왕이 나옵니다. 그는 앞서 언급한대로 19대 유다의 왕 ‘여호야긴’ 입니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앞서 여호야김이 25년을 다스렸고 이후 그의 어린 아들 여호야긴이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역시 또 다른 선한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남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 열왕기하 24장 8-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왕하24:8-9]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긴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역시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키는 것처럼, 백성들을 폭정으로 압제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지에 대해 본문에서는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켰고, 궁궐과 성읍들을 헐고 부수었다고 표현합니다. 이에 통곡 소리가 가득하고 황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6-7절입니다.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그렇다면 여호야긴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열왕기하 기록을 보면 그 역시 3개월만에 폐위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애굽이 아닌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B.C 597년 침공을 당하게 되고,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 갑니다. 그리고 37년 동안 감금당하여 비참한 말년을 보게 됩니다. 

본문 8-9절입니다.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참으로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여호야긴은 앞서 17대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포로로 끌려갔던 일을 알았을 것이고 나름 역사의 교훈을 받았을텐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신앙으로 재정비하지 않았고 결국 바벨론 포로로서 인생을 망치게 되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 신앙을 새롭게 재정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유다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할 줄 믿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긴과 같은 신세가 되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실패했던 유다 왕들을 반면교사 삼아 회개할 건 회개하고, 순종할 건 순종하며 오직 하나님 신앙을 재정비 하는 우리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암사자가 젊은 사자를 길렀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아마 젊은 사자가 첨부터 포악하게 되길 기대하고 길렀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유다의 왕으로 왕들을 세울 때는 좋은 기대와 소망을 갖고 세웠을 것이지, 결코 포악하게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라고 세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하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고 기록될 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패의 역사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하게끔 되는 것 같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맡은 본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나를 통해 이 땅에 성취되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한 가지 더 기도할 것은, 오늘날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쓰임 받는 위정자들과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이 나라가 평안함으로 우리도 평안하고, 우리 다음세대가 평안하게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나아가 복음 전파에 길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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