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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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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26:1-6, 두로의 멸망(23년 9월 2일, 서정원 부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3-09-01 22:11    조회 1,206    댓글 0  
 

두로의 멸망

에스겔 26:1-6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겔26:1-6]

1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3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를 굽이치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4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

5 바다 가운데에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6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오늘 이 시간에는 “두로의 멸망” 이와 같은 제목으로 에스겔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에스겔서 26장은 남유다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 중 한 부분으로서, 본문은 두로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 본문에서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이 있고 본문에서는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로는 어떤 나라이며, 그들은 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이에 대해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읽습니다.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하였던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한째 해 어느 달의 초하루입니다. 구체적으로는 B.B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던 해 어느 달의 첫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에스겔은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1장 1절, 8장 1절, 20장 1절 등등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때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아무래도 이 때는 가장 의미 있는 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고 주어지는 때는 의미 있고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때 이 모든 시간들이 가장 의미 있고 귀한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사모하시고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두로에 관한 심판 예언입니다.

2절을 읽습니다. 

2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2절을 보시면, 두로가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향해 비웃었던 내용이 나옵니다. “아하!”이런 표현도 나오는데, 이 표현은 감탄과 기쁨의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좀 더 살펴보면,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라고 했고, “그가 황폐하였으니”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두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비웃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두로는 왜 예루살렘을 가리켜 ‘만민의 문’이라고 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지정학적으로 예루살렘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남쪽에는 애굽이, 동쪽으로는 모압과 암몬이, 북쪽으로는 두로 시돈이 위치해있기 때문에 가나안 지역에서 예루살렘은 만민이 오고 가는 문의 역할을 하였던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할 수 있는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요, 고대 근동에서 나름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은 두로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견제할 만한했습니다. 왜냐하면 두로 역시 해로를 통해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많은 부를 축적하고 고대 근동에서는 나름 힘과 패권을 지닌 나라였고, 예루살렘보다 더 나은 위치를 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 남유다의 예루살렘이 멸망의 길로 황폐하게 되며 경쟁상대가 사라지게 되자, 자신들이 얻게 될 더 큰 명성과 이익으로 말미암아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의 슬픔과 아픔을 보며 함께 애통함 없이 그저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기뻐했던 것도 악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비웃고 멸시한 것이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두로처럼 해선 안 되겠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다는 식으로 다른 이의 아픔을 나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그 분의 백성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을 보며 기뻐했던 두로를 왜 그토록 심판하고자 했을까 생각해보면,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백성이 그 어디서도 무시받고 멸시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 지금 어떤 처지의 모습으로 있든지 영적 자신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자존감을 가지시고, 나아가 형제 자매의 아픔과 슬픔을 주의 사랑으로 끌어안고 품고 기도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절을 읽습니다.


3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를 굽이치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러므로..” 두로가 보인 그 악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두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로야!” 엄하게 부르시며, “내가 너를 대적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중반부터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바다가 그 파도를 굽이치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심판하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바다와 파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십니다. 바다와 그 안에 강한 파도는 어떠합니까? 세계 속 여러 자연재해를 들어 알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하루 아침에 빼앗아갈 정도로 큰 위력이 있습니다. 이런 위력 있는 바다와 파도 같은 여러 민족들이 와서 두로를 치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즉, 파도는 두로를 공격할 여러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군사적으로 공격 받고 크게 패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전쟁의 승리와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능력의 크고 적음에 따라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아무리 날고 기고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대로 하나님이 두로와 함께 하시지 않으며 두로의 편에 서지 않으심으로, 두로는 적에 침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두로처럼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를 위해 결코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한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절입니다.


4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


심판을 묘사하는 말씀으로서, 적에 의해 두로의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망대를 헐게 될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반부터 보시면,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 라고 합니다. 두로를 가리켜 티끌조차 남지 않은 한 맨 바위와 같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초르”는 바위라는 의미가 있는데.. 즉 바위와 같은 두로 위에 티끌조차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그런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5절에 심판의 내용이 이어 나오는데 5절 함께 읽습니다.


5 바다 가운데에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또한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이게 대체 무슨 심판의 내용일까 싶은데, 화력한 무역도시가 아닌 그물 치는 평범한 곳이 되게 하겠다는 의미로써 심판의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표현이 있나요? “그가 이방의 노략 거리가 될 것이요..” 노략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비참하게 된 모습을 연이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3-5절에서보듯이, 또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심판의 방식을 보게 됩니다. 전염병이든, 불뱀에 물리게 하든, 사람에게 쫓기는 것이든..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 모든 심판의 이유와 과정, 결과를 보면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심판이 없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죄가 있다면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다시 성령으로 충만함 받아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6절입니다.


6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6절에 들에 있는 그의 딸이라 기록되었는데 문맥의 흐름 상, 두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칼에 죽는다 하며, 그 심판의 목적이 나옵니다.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 모든 죄와 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권세가 그 분께 있음을, 하나님이 진정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되 그 분의 회초리와 채찍, 징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통해 알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또 죄악을 얼마나 가증스럽게 여기시는지, 정의와 공의를 보여주시며 그 분의 위엄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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