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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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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6-13절.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23년 1월 24일, 서정원 부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4-01-23 22:07    조회 941    댓글 0  
 
마태복음 26장 6-13절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마태복음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내용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었던 사건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절씩 읽어봅니다. 6절입니다.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나병환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일입니다. 여기 6절에 나온, “시몬” 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 나병의 치유를 받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치유의 주님이심을 언제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그 집에 머무실 때 한 여자가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7절의 내용입니다.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렇다면 이 여자는 누굴까? 본문에는 “한 여자”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이 여인은 베다니에 살던 마리아일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무엇을 했나요? 기록에 의하면,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머리에 부엇다고 하고, 요한복음에서는 발에 부엇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머리에도 붓고 발에도 부엇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머리에 부은 향유가 발끝까지 흘렀다고 보는 게 더 맞아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소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이같은 행위는 귀한 손님에게 보여주는 큰 존경의 표현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부었는데 그 향유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부었습니다. 왜? 주님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주님을 사랑함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찬양으로, 누군가는 봉사로, 누군가는 기도로, 누군가는 구제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제자들은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주님을 사랑함으로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드린 마리아를 향해 칭찬은 커녕 노한 얼굴과 노한 목소리로 꾸중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앞서 본 7절에서 향유에 대한 설명으로 “매우 귀한 향유”라고만 되어 있었는데, 사실 당시 이 향유는 가치가 굉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그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 정도 됐을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4장 5절을 읽어봅니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삼백 데나리온에도 팔 수 있는 향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삼백 데나리온은 대체 얼마나 나가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 당시 노동자 한 명의 일년 동안의 수입입니다. 따라서 굉장한 가치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어떻게 소유하고 있었나 이런 의문이 드는데, 당시 여자들은 결혼할 때를 위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싼 향유를 팔아 결혼 지참금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연유로 이런 향유를 마련해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물질 가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굉장히 비싼 것이지만, 마리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결혼도 해야 할 자기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향유를 전부 예수님께 부은 것이었습니다. 그럼 전부를 드렸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른 복음서 기록에 보면 옥합을 깨트렸다고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옥합은 주둥이는 좁고 몸체는 크게 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고, 옥합은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쓰려면 깨트려야 합니다. 즉 한 번 깨면 향유의 일부만 쓸 게 아니라, 전부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 조금도 남김 없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귀한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가 인색함으로 주님을 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문 8-9절을 읽어봅니다.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제자들은 마리아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왜 낭비하느냐? 왜 허비하느냐? 라고 한 다음, 나름 자기네들 입장에서 향유를 허비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댑니다. 무슨 이유를 댑니까? 향유를 비싸게 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것입니다. 그럴싸 해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었을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상황을 보면 가룟 유다가 제자들을 선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요한복음 기록을 보면 유다의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입니다.”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무슨 말씀입니까? 향유를 붓지 않고 판 삼백 데나리온을 당시 돈궤를 맡아 관리하던 가룟 유다에게 맡겨지면 그걸 훔쳐 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드려지는 사랑과 존경의 모습보다 자기 수중에 들어왔어야 할 삼백 데나리온의 돈이 한 순간에 버려지는 광경이 싫었던 것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명분을 삼은 건 “차라리 가난한 사람을 돕지” 였습니다. 여기에 다른 제자들도 동조한 것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총애를 받고 눈길을 받아야 하는 제자들 입장에서 마리아라는 여자가 유독 더 주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습에 질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말하며 마리아를 꾸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10절입니다.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주님은 마리아를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주님은 그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걸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다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이건 오해입니다. 주님은 분명 가난한 자들을 돕는 걸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너무 큰 기쁨을 누리셨으므로 특별하게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11-12절을 읽어봅니다.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다." 곧 죽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향유를 붓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선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걸 앞으로 죽을 주님을 위해 미리 장례 치뤄준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이 곧 죽을 것을 미리 알았다? 알고 장례관습대로 향유를 미리 부었다? 사실 마리아도 몰랐을 것 같습니다. 주님이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미리 장례를 치뤄줬다면 참 감동적인 것입니다만, 마리아가 주님의 죽음을 미리 알고 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일주일 뒤 앞두고 마리아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건 내 장례를 위한 것이다!"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십자가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고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고 더군다나 한 마리의 어린 양처럼 죽으실 이유는 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이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주님은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그 의미도 모른 채 서로 싸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또한 앞으로 주님을 배신할 제자들의 모습을 미리 예견하시면서 주님의 마음을 알아줄 그 누구도 없고 오히려 씁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 마리아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과 장례 앞에 위로를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얻어지는 많은 이익과 좋은 것들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순수하고 진실되게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하며 즐거워하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 13절입니다.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행한 일이 온 천하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행위가 곧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주님을 사랑한 것 밖엔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 마리아의 행위가 시대를 거쳐, 모든 곳에서 기억될 것이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주를 사랑하는 자를 높이 세워주십니다. 주님은 주를 사랑함으로 행한 것들을 다 알고 계시며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아시고 선하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며 충성을 다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헛된 것 아니냐, 왜 인생을 허비하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얼마나 높고 위대한 분인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주님을 알면 주님께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남김없이 희생의 제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를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받아주시고 기뻐하시며 놀랍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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