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 짐을 벗으라
본문: 마태복음 11장 27-30절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면, 이것을 사람이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이 피라미드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실용가치가 있는 것인가? 생각하면 이것은 단지 무덤일 뿐인데, 무덤 외에 설명할 무언가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대하여 아직도 의문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가설 중 노예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무거운 돌을 옮기라고 하면 누가 옮기겠습니까? 그렇게 큰 벽돌을 지기에는 돈을 받고 하기에도 쉽지 않았었을 것입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십명씩 죽었을 것입니다. 노예라는 그 신분도 이 세상을 살기 힘든데 그렇게 무거운 벽돌을 지고 다른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고 있었을 그들의 삶에는 절망과 좌절뿐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던 청년들도 교회를 떠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하며 교회를 등지고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나 그렇게 말한 데카르트도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하여 실패하였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사람의 근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것,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자,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더욱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삶이 진정한 지혜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던 저들을 향하여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진리 안에서 자유 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함께 맛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함께 2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노예처럼 세상의 종노릇 하던 사람들을 향해 오늘 주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죽음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라 꿈을 꾼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결국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고, 죽음이라 생각했던 십자가의 길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로 가기전에는 우리는 진정한 생명도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되신 예수님께 갈때만이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트레스에 불면증에 잠을 설치며 하루밤을 지나는 시간이 있으신가요? 내 앞에 일어난 일을 해결할 수 없어서 오늘도 힘겨워 하시는 분들이 혹여나 있지는 않으십니까? 작은 일에도 놀라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변했는지요, 자살률 1위의 나라,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누구나가 다 손에 술잔을 쥐고 오늘 일을 잊어버리자고 말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마약을 하고 결국에는 삶을 포기해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예수님은 그런 세상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 “나에게 와서 쉬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 짐이 무거우십니까? 모두 예수님께 나아가 세상 짐을 벗어 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에수님은 세상의 짐을 진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29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함이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과 겸손을 배우기 위해 멍에를 매라고 합니다. 멍에라는 것은 소가 쟁기를 끌기 위해 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나에게 와서 나의 일을 하며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빈둥대며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과 겸손함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안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인 것 입니다. 진정한 안식일의 개념은 일을 쉬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멍에를 매고 매일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온유함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마음, 인내심을 갖고 어떤 무례함에도 다투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늘 높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에 온유함과는 늘 거리가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높아져야 하기에 하는 어떤 작은 예의는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가지는 잔인함이 늘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겸손보다는 교만함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겸손은 힘들어” 이제는 작아지는 것이 힘들어서 겸손함과 온유한 마음을 잃어버린 이 시대, 전쟁이 발발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30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의 멍에는 쉽습니다. 또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십자가를 보면 우리는 고통을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이미 우리 주님이 지고 가신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갈 때 나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님께 배워 참된 자유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의 짐을 벗고 주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