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랑과 섬김
본문: 요한복음 13장 1-7절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설교도 많이 듣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알고는 있어서 이제는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아니겠습니까? 사랑이 남발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무뎌진 사랑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아시고 자기의 사람들 사랑하시기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니 예수님 사랑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의지적 사랑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할만할 때 하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을 보면 아이를 낳고 살다보면, 이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의리만 남아있다라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 불행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때를 따라 사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때는 예수님 같은 시기에 뜻을 펼치거나 영향력을 확장할 때 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고 가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방황하며 살기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훌륭한 목회자, 신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궁금증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실상은 다 비슷합니다. 그리 선하거나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살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일 것입니다. 오늘 보니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유다일까? 그가 전대를 맡은 사람이기에 아마 그중에서 머리가 가장 좋고 계산이 빨라서 제자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게 됩니다. 그 비판적인 사고에 마귀가 타고 들어와 더 많은 비판적인 생각을 넣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절제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생각은 그르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이 아니라, 왜? 라는 질문을 하며 생각의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게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많으십니까? 오늘은 비워내고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되는 이 한날 되기를 소망합니다. 즉시로 순종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가 주는 지도 모르는 생각들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누군가의 영향에 의하여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그 밤에 예수님은 그런 가룟 유다의 마음을 아셨지만, 배신할 유다뿐만이 아니라 배신할 것과 나를 부인할 것과 나를 떠나갈 모든 제자들과 함께 가장 어두운 그 밤에 빛으로 사랑으로 오신 주님께서 마지막임을 아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은 종이 취하는 모습입니다. 목사님들 예배드릴 때 가운 위에 스톨을 목부터 걸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세족례의 수건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스톨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을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극치를 우리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발을 씻어주시는 주님, 주님의 이 발을 씻어주시는 것은 이것은 단순히 낮은 자세의 섬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 속죄에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의 신학을 빛의 신학이라 합니다. 어두울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저는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 사랑에서 나오는 참 빛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배신 당한 일이 있습니까?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제부터 그 어두움의 일들이 계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어두움 속에서도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섬김은 사랑에서 오며,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가룟 유다의 배신 할 것까지 씻어주시는 주님의 그 찬란한 빛을 여러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유다와 제자들의 어두움을 밝히는 그 빛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도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배신할 가룟 유다를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먼저 가시는 예수님, 아직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인간적인 눈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입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죄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을 때에야 비로소 주님의 씻으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주님, 우리의 어두움을 밝게 비춰주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는 주님의 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사랑의 크기가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섬겨야 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끝까지 섬겨야 합니다. 어디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게 원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