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본문: 사도행전 14장 19-23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같은 제목으로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두 번째 편지 보낼 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지내면서 당한 고난에 대해 말할 때..”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11:25) 라 했었는데, 여기서 돌로 맞았다고 기록한 일은, 아마도 루스드라에서의 돌 맞은 던 걸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구한테 맞았나? 누가 돌을 던졌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루스드라까지 바울을 뒤쫓아온 유대인들과 유대인들이 “저 바울은 돌로 칠 자다!” 라는 선동에 휘둘렸던 루스드라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죽었구나 할 정도로 심히 맞았습니다. 그 내용이 19절입니다.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여기서 보면 유대인들 속에 대단한 열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그 먼 거리를 뒤쫓아 올 정도였다는건, 바울을 해치려는 열심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건, 그들의 열심이 제대로 된 열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복음과 주의 종을 핍박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헛된 방향으로 헛된 열심을 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향하여 온전한 열정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와서, 바울은 심히 맞았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 걷지 못하는 이를 걷게 한 기적에 깜짝 놀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추앙하고자 했던 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유대인들의 선동에 속아 바울에게 돌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핍박은 엄청난 핍박이었습니다. “죽은 줄로 알고..” 돌에 맞은 바울을 죽은 줄로 알고 루스드라 성밖으로 끌고 나가 내던졌다고 했는데, 아무 기척도 보이지 않는 실신상태였단는 걸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이와 같은 핍박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세상은 절대적인 진리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지 않고, 믿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때 누가 함께 하십니까?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줄 믿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했으니, 어떤 핍박과 고난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이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절입니다.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바울은 돌에 맞고 성밖으로 내쳐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봤던 바울의 측근, 제자들이 바울 곁에 둘러섰습니다. 아마 걱정하였을 것이고, 어떤 이는 진짜 죽은 줄로 알고 시신을 가져다 장례까지 치룰 생각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 감사하게도 바울은 일어났습니다. 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당시를 상상해보면, 제자들은 기뻐 뛰며, 바울을 다시 부축하여 몸을 챙겨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몸부터 챙기기는커녕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갑니다. 왜 들어갔을까. 그 목적에 대해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성품과 발자취를 봤을 때,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전도사역을 위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음으로 인연 맺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려고, 또는 기회를 잡아 꼭 만나려고 했던 불신자를 만나려고 등등 복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은 사명감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또 영혼구령을 위해. 내 목숨을 다해, 내 정성과 뜻을 다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물론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가 하셔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오직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맡은 사명 끝까지 감당하시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본문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이틑날 루스드라에서 나와서 함께 더베로 갑니다. 그러면 더베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요?
21절입니다.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가서 그 곳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습니다. 제자는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더베에서 많은 제자를 삼으며 귀한 열매와 결실이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가 때때로 복음을 전할 때 ‘이게 과연 되는거야?’ 하고 의구심과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 능력의 한계가 너무 잘 보이고, 보여지는 상황과 환경은 녹록치 않아 마음에 낙심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더베에서 복음을 전할 때 주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바울도 아니고 ,바나바도 아니지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면 열매 맺고 결실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능력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며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어서 분명 열매와 결실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세워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다시 본문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어디로 돌아갔냐 하면,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곳들은 어디입니까? 핍박이 있던 곳입니다. 영혼의 추수도 있었지만, 앞서 본 것처럼 루스드라만 해도 돌 맞고 죽을 지경까지 핍박받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갔을까요? 왜냐하면 그 곳들에 복음을 전하며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히 세우기 위해, 사람이란 때로 어려움 앞에 흔들리며 믿음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성도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참 놀라운 부분입니다. 바울 일행은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자기 안위와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자들이란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돌을 맞을 수 있고, 생사까지 걱정할 정도인데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불살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편한 것만 찾는 안일한 신앙이 좀 부끄럽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참 부족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이와 같이 용기와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 들르며 전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지 말고, 주를 믿는 믿음 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여 닥칠 유대인들의 핍박과 갖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도록 이와 같이 권면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는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단 하나님의 나라 가는 길에 환난이 닥칠 것이란 의미가 있기도 하고, 나아가 그 환난을 견디고 이기며 끝까지 믿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서 흔드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환난, 핍박, 유혹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려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도 물러감 없이 이기고 견디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그 나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 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계속 믿음의 싸움을 하며 인내하고 이기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선한 싸움 다 싸우고 그리스도께서 주실 상급과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기에 성령님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시고 오늘도 성령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23절입니다.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되돌아갔던 교회들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바울 일행은 각 교회들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지도자를 통해 교회 성도들을 잘 돌보고, 성도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떠나고 난 뒤 남겨질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 지도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교회는 훈련된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머리가 되시지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많이 세워지길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대와 청년들이, 또 청장년, 모든 장년들이 각자의 은사를 따라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세우며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와 같이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23절 하반절에 보시면,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께 장로들을 위탁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금식하며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손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들을 사용하시길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중심과 헌신으로 수고하는 이들을 볼 때, 귀히 여겨 주시고 부족한 건 사랑으로 덮고, 격려와 위로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면서 협력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담임목사님을 위시하여 부교역자, 장로님들, 교구장과 속장, 각 부서장, 주차장에서, 식당에서, 행정부터 교사들,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하는 일꾼들을 주님 손에 위탁하며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회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