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마음
본문: 누가복음 15:1-7
찬송가: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저를 잃어버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저를 잃어버렸다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요? 그것이 아니라 저희 부모님이 저를 잃어버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일 것입니다. 또, 제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몇날 몇일을 눈물로 지세우던 어머니의 소원은 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아니겠습니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나아옵니다. 누구나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아옵니다. 그들 중엔 무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세리와 죄인의 무리 그리고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무리 그리고 제자들 이렇게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아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예수님 곁에 더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가까이에 있으니 그들은 더욱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을 것입니다. 반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의 귀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죄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불편하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수군거리고 불평하였겠습니까? 함께 1-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여기 “가까이 나오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엥기존테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접근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세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계속해서 이들을 초대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예수님에게 나아왔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꾀나 불편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의 불평이 아니라 쉴새 없이 계속해서 토로했을 것입니다. 이런 자리가 있다면 그들은 늘상 불평불만 했을 것입니다. 2절 말씀에 보니 “이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어쩌면 예수님을 율법 선생 정도로만 생각했나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같이 식사한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있으니 예수도 죄인이라고 그를 떠나라고 말했었을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불편하신 분들이 있으십니까? 저희 교회에는 참 소중한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김은 권사님을 찾습니다. 김은 권사님에게 구제비가 있으니 매주 천원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꼭 목사님께서 친구들을 초청하십니다. 사실 목사님께서 모셔오시는 그분들이 아니면 이 예배당을 가득 체우는 것은 아마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숙인이 오는 것만으로 마음이 불편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뿐만아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는 그 사람들,, 예수를 괴롭히고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그들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 요한일서의 기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 주셨는데 우리는 누구와 화목하며 살고있습니까? 여러분, 가능하다면 많은 이들과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예수님은 수근되고 불평하는 자리에서 비유를 들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3-6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이 말씀에 대해서 엄청 많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양에 대하여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목자가 양 한마리 찾으러 간다고 하였을 때 99마리를 버린 것이 아니냐는 글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양은 시야가 좁기 때문에 앞에 있는 양을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맨 앞에 있는 양은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들 목자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목자가 가는 길에 이 양들이 같이 따라가지 않았겠습니까? 양을 백마리 가진 이 사람이라면 아마 품꾼도 쓰지 못하는 그런 경제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상황이라면 양 한 마리 찾아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 백마리 가진 사람에게 한 마리는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처럼,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그 여인처럼 평안함이 사라진 상태일 것입니다. 완전한 샬롬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누가 돌보나요?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불평하지 말고 한 영혼을 위해 찾아다니시는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나의 자녀가 길을 잃고 방황하십니까? 주님이 기다리실 뿐만 아니라 그 잃어버린 양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부활절기 잃어버린 양을 찾노라 우리는 열심히 그들의 이름을 작성하고 같이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도만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신가요? 찾고 계신가요? 여러분, 무엇을 잃어버리셨습니까? 혹시,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리신건 아니가요? 너무 작은 것이라 시시해서 찾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날 찾아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명쯤은,, 그런 마음이 아니라,, 오늘도 저 영혼이 주께 돌아오기를 주님이 원하시겠구나!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을,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의 마음을, 양을 잃어버린 목자의 마음을 회복하여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께로 돌아오라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은 죄인이 돌아오시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기쁨은 의인 아흔아홉보다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흔아홉이 안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백이 된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한 마리가 와서 이제는 완전해 진 것입니다. 99마리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그 기쁨, 드디어 100마리가 되었구나! 할렐루야!
여러분, 아버지 품을 떠나 제 멋대로 살아갈 아들의 미래가 아버지의 눈에 훤히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99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100이 완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100이 되길 소망합니다. 혹여나 내가 나를 잃어버리셨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때는 날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손을 꼭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다니시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우리 자녀 세대들에게도 주님은 찾아가주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주님과 동행함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헌신하는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