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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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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5-11절.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라(23년 6월 8일, 서정원 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3-06-08 00:20    조회 1,616    댓글 0  
 
고린도후서 2:5-11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라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오늘 이 시간에는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고린도후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는 바른 교훈을 따라 잘못에 대해 징계와 책망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감싸고 세워주며 용서해야 함을 깨닫게 되는데요. 용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행할 바이기도 함과 더불어 사단마귀를 이기는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용서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본문을 한 절씩 읽어가며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교회를 근심하게 하지 말자(5-6)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5절을 보시면, “근심하게 한 자” 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누구며, 누구를 근심하게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 본문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정체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바울과 또 고린도 교회를 괴롭히고 근심하게 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단수로서 한 사람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교회를 근심시키는 여러 무리를 대표하여 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으로써 “근심하게 한 자”는 여러 명 복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떤 괴로움과 근심거리를 바울 및 고린도 교회에 가져다 주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사도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고 훼손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바울의 돌봄을 받는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혔던 잘못을 범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어 6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은 벌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함께 읽은 6절의 내용처럼,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은 처벌 방고 징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편지를 보내어, 그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징계의 이유가 된다는 걸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의 핏값을 주고 산 존귀한 주님의 백성들이 다 같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주님과 머리 삼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이 귀한 교회를 흔드는 것은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 분의 교회를 자신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허물고 근심시키는 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 칭함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며 스스로를 낮춰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교회를 감히 박해했던 자였기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15장 9절을 읽어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15:9)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려고 하는 것은 큰 죄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은혜와 사도의 직분까지 받았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고자 핍박했던 죄를 범했으므로 감히 사도의 직분을 받기에는 송구스럽다고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근심시키는 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가꾸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각자의 은사와 믿음대로 최선을 다해 주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7-8)

다음 7절을 읽겠습니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본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처벌하라고 했던 그 사람 또는 그 사람들에 대해 이제는 용서하고 감싸 안아주며 위로해 줄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리고 중반부터 보시면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고 하면서, 징계 받은 자가 징계 받고 뉘우치는데서 끝나지 않고 너무 좌절하고 낙심하여 실족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혼도 나보고, 벌을 받아본 적이 있을텐데, 혼나고 벌 받으면 사람이 굉장히 위축이 됩니다. 정당하게 징계를 받았으니, 이제 훌훌 털어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 자신을 자책하고 정죄하면서 스스로를 꾸짖고 나무라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정죄하며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지금 바울은 징계 받은 이가 혹여나 그런 마음으로 마음 속으로 끙끙 앓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또 너무 상실하여 신앙과 삶을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염려를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서해주고 이제는 감싸 안고 위로해주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은 마땅히 사랑과 용서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용서 받을 자격과 공로가 없는 우리에게 대가 없이, 값 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거저 받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저 베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사랑과 용서를 거저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죄 범하였다 할지라도 다시 일으켜세워주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격려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징계 받고 뉘우친 그 사람들을 이제는 감싸 안아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해주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어 8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함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10절에서도 사랑과 용서의 권면을 동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10절을 읽어봅니다.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 볼 것은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용서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성도님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님을 닮고 주님의 성품을 따라 사랑과 용서를 행하시길 바랍니다.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시고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잘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과 함께 하시며 날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11절을 읽겠습니다.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11절을 보시면,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랑과 용서의 삶이 사탄에게 속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탄은 어떤 존재입니까?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며 불순종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사탄은 우리가 사랑과 용서를 하지 못하도록, 용서하지 못할 여러 이유와 미움과 시기를 자꾸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속아선 안 됩니다. 사랑과 용서가 손해보는 게 결코 아닙니다. 앙갚음하고 복수하는 게 손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성도 여러분,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사탄의 계책에 속아 시기, 미움에 빠지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과 용서에 힘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탄에게 속지 않도록 더욱 사랑과 용서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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