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복음의 새 시대를 살아갑시다.” 오늘 본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그런 내용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와 은혜가 왕 노릇 하는 그런 복음의 새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걸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새 시대, 예수 그리스도
먼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라고 둘 사이의 닮은 점을 오늘 말씀이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의 유사점을 살펴볼 때 그 내용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왔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점이 있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한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그 사건을 바로 ‘원죄’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을 볼 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남을 미워하고, 욕하고, 무언가를 가지고자 욕심내고 이런 일들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반대로 남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헌신하고, 섬기고 하는 일들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무척 힘이 듭니다. 그것이 바로 사망이 왕 노릇 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사망이 왕 노릇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권세 아래에서 누구나가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세상에선 그게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된 세상을 만든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신분이나 인류에게 미친 영향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똑같습니까? 왜 오늘 말씀에선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 시대의 시조가 된다는 것. 그것 하나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옛 시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대조가 되는 부분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인해 의와 은혜가 왕 노릇 하는 새 시대가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도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그것 하나가 닮았습니다. 즉 아담이 범죄의 시조라면 그리스도는 의의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속한 사람입니까?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인간인 이상 인간의 시조인 아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아담의 모형이신 새로운 시조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사망과 죄의 권세의 그늘 아래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야만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분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며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죄의 통치를 종식 시키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서 내가 죄를 짓는 게 더 이상은 자유롭지 않고, 너무나 양심에 찔리고, 너무나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고, 너무나 하나님 앞에서 애통한 심령으로 울부짖는, 옛 시대의 사람이 아닌 새 시대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생명 안에서의 왕 노릇
그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의 왕 노릇 하는 복음의 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시대의 시조라는 점에서 둘의 유사점이 있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왕 노릇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뉘고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담과 예수님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5절에 ‘그러나’ 라고 시작하면서 앞으로의 내용이 앞에서 말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이 전개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아담의 유사점을 말하였으나 지금부터는 그리스도와 아담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와 사망의 세력 아래 놓인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또 사망이 왕 노릇 하던 것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인들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제 우리의 왕이 바뀌었습니다.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앞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 노릇 하던 것이 바뀌었으니 옛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거듭남’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져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용서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마음이 어려워서 나온 분들이 계실까요? 오늘 그 문제를 놓고 정말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아담의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을 예수님의 순종이 뒤집었습니다. 생명이 사망을 이깁니다. 은혜가 심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용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지금까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시켜 살펴보았습니다. 18절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역할 대조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한 범죄로 인한 많은 사람의 정죄,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많은 사람에 대한 칭의. 그런데 여러분, 그 칭의의 감격이 여러분에게 있으십니까? 아 이제 우리가 복음의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해야지! 이런 결단이 정말로 서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의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20절 하반절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 말씀은 인간이 깊은 정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면 될수록 인간을 향해 쏟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더욱 풍성하게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절망적인 처지를 절실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사람은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고 그런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곳에서는 죄 사함도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역사할 수 없지만 죄를 통절하게 느끼고 회개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풍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 것, 바로 여기서부터 주님이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스스로 떳떳하고, 의인이라 생각하고, 혼자서 이 한 세상 잘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전혀 떳떳하지 못하고, 혼자서 도무지 이 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되 인간인지 깨달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게 여겨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감격이 살아나기를 바라고 또 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심령을 어루만지시고, 여러분은 그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