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공의에 관한 규례
본문: 신명기 25:11-19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오늘 이 시간에는 “공의에 관한 교훈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신명기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1-12절은 남자의 음낭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 13-16절까지는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사용하라는 것, 17-19절까지는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이 내용들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데, 본문을 한 절씩 읽어가면서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음낭을 잡아선 안 된다.
1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1절의 말씀을 보시면, 어떤 한 만약의 상황이 나오게 됩니다. 두 남자가 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특이한 상황은, 한 사람의 아내가 싸움 중에 있는 그의 남편을 구하려고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남편을 치는 자의 음낭을 잡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여자가 싸우고 있는 자기 남편을 도울 목적으로서 남편과 싸우고 있는 상대편 남자의 급소, 생식기를 붙잡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2절의 말씀을 보면, 그와 같이 행동한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나오는데, 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 ..이렇게 규례가 적혀 있습니다. 굉장히 가혹한 방법으로 그 여자를 처벌합니다. 그 여자의 손목을 봐주지 말고 찍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그 여자에게 가차 없이 처벌하였을까요? ‘자기 남편이 맞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대편 남자의 급소를 노린 정당방위 아닐까? 그 여자에게 너무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자식을 낳아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여겨졌던 사회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식을 낳게 하는 중요한 신체 기관 음낭을 상하게 하는 일은 굉장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음낭을 꽉 붙잡고 상하게 한다면 상대편 남자가 생식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고, 결국 상대편 남자가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는 지경까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음낭은 남자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곳인데,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는 곳을 공격한 이 행위는 그 자체로도 나쁜 행위라고 여겨졌으며, 무엇보다도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도전하는 그런 행위로도 보았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으며 단호하게 또 공의롭게 심판함으로 처벌하였던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성도님들, 하나님은 공의롭게 행하시며, 죄에 대해 분명한 심판을 행하시는 분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두라
이제 13절부터 15절까지는 정직한 마음으로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두라는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1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큰 것 작은 것을 넣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주머니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다른 저울추를 넣지 말라는 것인데, 두 가지의 저울추를 두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사고 팔 때에 두 개의 다른 저울추를 이용해서 남을 속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뭔가 남에게서 물건을 사고자 할 때는 더 많은 양을 받기 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큰 저울추를 사용했다가 또 물건을 팔 때에는 상대에게 덜 덜어주기 위해서 작은 저울추를 사용하는 그런 속임의 행위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14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두 종류의 되를 두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앞서 본 말씀과 비슷한 의미의 말씀입니다. 곡식을 팔 때는 작은 되를 사용하여 적은 양을 주려고 하고, 곡식을 살 때에는 큰 되를 사용하여 남을 속이고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큰 것 작은 것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보시면 이와 같이 남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는지 나옵니다.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두라고 합니다. 즉 남과 무엇인가를 거래하는 행위에 있어서 남을 속이려는 마음과 행위를 버리며 공정하게 정직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6절을 이어서 보면 두 개의 저울추와 되로 거짓으로 남을 속이려는 자,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자, 남을 속이고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그 탐욕적인 사람에 대하여서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공의롭게 행하지 않고 거짓과 탐욕으로 행하는 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하며 악을 행하는 것으로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상인이 어떤 적당한 이문을 남기는 행위까지 그릇되다가 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탐욕에 빠져 남의 것을 것으로 거짓으로 취하는 불리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15절의 말씀에 나오는 대로, 거짓을 버리고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사용하며 공의롭게 정직하게 사는 자에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 역시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공정하고 공의롭고 또 정직한 이 삶의 태도를 취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
이제 17-19절까지는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17절의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여기 보시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말렉은 누구이며,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했던 것일까요?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첩이었던 딥나를 통해 낳았던 아말렉의 후손들로서 매우 거친 족속들이었습니다. 매우 호전적인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난한 남부 지역의 광활한 광야를 무대로 삼아서 기습적인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까지 급습했는가? 바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뒤에 제대로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피곤할 때에 갑자기 후미에 들이닥쳐서 행군에 지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쳤던 것입니다.
18절에 그들이 참 비열하고 잔혹한 행동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말렉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약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골라 쳤었던 것입니다. 노인, 여자, 어린이 등 행군 후미에 뒤쳐졌던 연약한 자들을 골라서 일부러 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가 있다면 사실은 이런 단순히 그들의 잔혹함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큰 죄의 실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쳤던 것은, 이스라엘 뒤에 서 계신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얕잡아보고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면 결코 이스라엘을 함부로 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두려워하였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선대했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함부로 건드렸던 그 행위는 결국 그들 속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얕봤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에 대해 무엇이라 명하십니까?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어떻게 하라 말씀하십니까? 아말렉 족속을 천하에서 없애라, 진멸하라! 이렇게 명하십니다. 즉 아말렉의 존재가 없어지도록 도말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말씀이 이후에 그대로 성취가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는 완전히 사라진 족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인정하지 않는 자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