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장 16-21절
디도와 동역자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오늘 이 시간에는 “디도와 동역자” 이와 같은 제목으로 고린도후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면,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모으는 일과 관련된 내용이며, 구제 연보를 모으는 일의 대표자로써 디도를 택했고 또 다른 형제들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이 이같은 내용임을 간략히 알고, 한 절씩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보시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이유는 바울과 동일한 마음, 동일한 열정을 디도라는 이에게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뜻과 열정이 디도에게도 고스란히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보면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서 자기 일처럼 해주는 이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감사하게도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진 디도라는 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아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모으고자 고린도 교회에 누구를 보낼까. 누가 적임자일까 고민하고 기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디도에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아마 어렵사리 부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디도가 보였던 반응은, 예를 들어 “또 나야?” “왜 하필 지금 가라고 해?” 등등의 불평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반응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신의 반응이었습니다.
17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구제헌금을 모으기 위해 고린도로 가라 권함을 받았을 때, 디도는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라 합니다. 스스로 원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디도의 상황은 이미 한 차례 고린도에 갔다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또 다시 고린도에 가라고?” 이런 반응이 나올 법한데도, 디도는 불평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의 제안에 반가워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했습니다. 헌금 모금을 위해 기꺼이 고린도로 가겠다며 흔쾌히 순종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바울은 ‘디도에게 나와 같은 마음, 같은 간절함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마음을 품는 이가 있다는 건 참 인간적으로도 든든하고 기쁜 일입니다. 사회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저절로 힘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바울에게 그런 사람이 바로 디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도는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가 디도와 같은 동역자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는 지금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일에 무관심하고 나 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정과 마음을 동일하게 품고,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자기의 일을 맡기시고,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지난 날 지난 시간,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마음을 쏟았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디도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의 삶을 잘 살았는가 돌이켜 봅니다. 주님의 일에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신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또 그 사람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디도와 같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주여! 주님의 열정이 내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이같이 기도하시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본문 18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보시면,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라 합니다. 이 말씀은 디도와 함께 또 다른 어떤 형제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디도 혼자만 보낸 게 아니라, 한 사람을 같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후 본문에서 보겠지만, 또 다른 사람도 같이 보냈기에 디도를 포함해 총 3명이 고린도교회에 파송되는데 18절에는 디도의 첫 번째 동행자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지만, 사실 어떤 한 사람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형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었다? 중반절에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 였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였기 때문에 모든 교회에서 신뢰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형제에 대해 19절에서도 설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그는 또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중간에 보시면,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아마 여기서 여러 교회라고 했을 때는 마게도냐 교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본서가 마게보냐에서 쓰여졌다는 걸 감안할 때 여러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들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 형제는 그 교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였고, 택함을 받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 택함 받았는가? 19절 상반절에 나오는데,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연보를 모으고자 하는 바울의 원함을 위해서 택함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가 18,19절에서 보는 디도의 동역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주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도전 받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어떤 사역을 위해 누구를 택할지 고려할 때, 이 사람이 제격이다 이 사람이 적격이다! 할 수 있는, 그래서 교회의 칭찬과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영광과 명예가 주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명을 위해 모든 이들에게 칭찬과 신임 받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함 받으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20절을 읽어보면, 바울이 예루살렘 구제헌금 사역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구제헌금이 작은 돈이 아닐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액의 헌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읽습니다.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보시는 바와 같이 “거액의 연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거액의 구제헌금이 모일 것이라 예상했고, 이 큰 돈에 대해 누군가는 안 좋은 소문을 낼 것으로도 예상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바울은 진심을 다해 구제헌금을 모으는 것인데, 선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울이 선교하면서 자기 잇속 차리려 한다, 자기 배를 배불리려 한다.” 이런 식의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헌금사역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구제헌금을 모으지 않았던 것이고, 디도를 포함해 교회에서 신망받는 형제들을 함께 보낸 것입니다. 헌금과 관련해 오해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만 정직하면 되는 것이지, 사람 눈치 볼게 뭐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앞에서도 주의해서 사역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사실 우리의 삶은 단지 사람들 보기 좋게 사는 게 아닌 공의로운 재판장 하나님을 의식하며, 주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이 선하고 바른지, 의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전혀 무시하고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눈치 보란 의미는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오해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건 비단 어떤 목회자나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함께 주님의 일을 할 때, 모든 이들이 적용할 만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어떤 선한 사역이 어떤 빌미로 비방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 사역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실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에게 오해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덕을 세워가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구제헌금을 모으고 운반하는 일로 디도와 동역자들을 믿고 의심하진 않았겠지만, 예민한 헌금문제였기 때문에 신중하게 한명이 아닌 굳이 세명의 사람을 세웠던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역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직시하며 늘 정직하고 성실하고 신중하게 일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함께 일하는 동역자 간에, 또 어떤 누군가가 봤을 때에도 덕이 될 수 있게 일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룰 때 더 좋은 사역의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