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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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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장 7~1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 (2023년 7월 16일, 심동준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3-07-16 04:47    조회 1,292    댓글 0  
 

제목: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

본문: 빌립보서 3:7~11

찬양: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3:1)

 

지난 1장에서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한 바울은 3장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지상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자 기쁨이요 그들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사도 바울의 상황을 보면 다소 아이러니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집필할 시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가택 연금된 상태였습니다. 아직 피의자의 신분이었기에 가택연금으로 그친 채 실질적인 탄압이 없었고 사람들도 자유로이 만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동의 자유를 구속당한 채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나마 코로나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동의 자유를 구속당하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로마에서 중요한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였기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무리 본인이 결백하더라도 그 마음에 평안함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그 안에 충만한 기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절 읽겠습니다.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은 본 절을 통해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반복해서 권면하는 것이 그에게는 수고스럽고,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 아닌 오히려 반복하는 것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이롭고 또한 주님 안에서 복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일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을 말할 때 상대방이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할 때 종종 이렇게 행동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오직 주님 만이 우리의 기쁨되시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NIV 성경에서 본 장의 주제이기도 한 주 안에서 기뻐하라Rejoice in the Lord로 표현합니다. rejoice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님 안에서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닌 그분 안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우리에게 참 기쁨 되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부귀영화도 기쁨도 잠시 동안이며 우리 안에 머물러서 영원한 참 기쁨 되지 못합니다. 참 기쁨은 우리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 그분께서 주시는 참 평안과 기쁨이 흘러나와 우리의 마음을 적실 때 우리는 참 평안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주님의 자녀이기에 그의 품에 거하며 기뻐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주일 아침 새벽 예배로 여러분의 하루를 드리며 그분 안에 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참 기쁨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2. 육신을 믿는 것 (3:7~9)

 

본문 7-9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그가 이롭다고 생각했던 땅의 것은 더 이상 이롭지 않으며 그의 의로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할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7-9절 읽겠습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본 절은 이방 교인들에게 율법주의와 유대주의를 강조했던 율법주의자들을 조심하고 그들이 율법을 강조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은 사도 바울은 결코 율법 자체와 그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과 달리 이방인들은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했을 뿐 유대인들은 율법을 따르기를 권했고 그 자신도 율법을 철저히 따랐습니다. 4-6절 읽겠습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는 정확히 8일 만에 할례받은 이스라엘 족속이며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의 아들 베냐민의 후손이며 (사울, 에스더와 모르드개, 다윗 왕조에 충성, 바벨론 포기 때 성전 건축에 참여),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 그 당시 가장 존경받는 바리새파 유대인 가말리엘 선생에게 (아기 예수를 안고 축복한 시므온의 아들) 수학했습니다. 율법적으로 흠이 없기에 많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구약의 율법의 하나님만을 믿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와 그의 교회를 비판하는 유대인들보다 더 율법적이고 유대적인 배경을 지닌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비난이 오히려 우스울 상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메석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가 가진 모든 이로운 것이 다 해로 여겨지고 쓸모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집안 배경, 학벌, 지식 등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내려놓았으며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주님을 얻으려 즉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닌 주님만을 믿고 위하려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시고 허락하신 것에 불과한데 때론 이것을 맹신하고 때론 주님보다 믿으며 더 크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버려 주님만을 의지하고 그분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분 한 분으로 힘입어 사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의롭다 함을 칭함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함도, 율법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고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의로움이기에 의롭다 함을 칭함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시선이 빼앗기고 눈이 멀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한발짝, 주님께 한발짝 걸쳐서는 결국 교회를 멀리하고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 세상이 아닌, 썩어질 육신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볼 것을 권면합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모하며 그의 이름만을 얻으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3. 성도의 고난과 부활 (3:10~11)

 

이어지는 10-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무엇을 그가 본받고 싶어하는 지에 관해 밝힙니다. 10-11절 읽겠습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본 절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에 관해 알기 원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또 부활과 고난에 관해 깊이 알고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의 제자들과 이를 보고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자신들을 구할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습니다. 이들은 고난에 좌절했고 부활에 관해 예수님께 직접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부인했습니다.

 

본 절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의미와 부활에 관해 알기 원하며 더 나아가 직접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매 맞고 주리고 목마르고 죽기까지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걸어가며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자신이 죽더라도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디모데후서 4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디모데후서 7-8절 읽겠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고백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곧 믿음은 하나님의 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그분의 의로우심에 참여하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는 그분의 의로우심에 참여하는 삶을 살기 원했고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러한 다짐을 적은 이유는 본인의 의지와 비전 표명을 넘어 그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기 원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핍박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고 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부활한 천국 백성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당시 교회 교인들만큼 핍박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영적 전쟁 가운데 교회의 권위가 가치가 흔들리고 성도는 세상 유혹에 넘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난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 이에 참여하기를 원했듯이 고난과 영적 전쟁 가운데에서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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