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5장 9-11절
다윗의 청을 거절한 나발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25:9 다윗의 사람들이 도착해 다윗의 이름으로 나발에게 이 모든 말을 그대로 전하고 기다렸습니다.
25:10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대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자기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25:11 내가 왜 내 빵과 물과 양털 깎는 사람들을 위해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
오늘 이 시간에는 “다윗의 청을 거절한 나발” 이와 같은 제목으로 사무엘상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다윗의 도피 여정을 살펴 볼 수 있는데, 24장에서는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었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다윗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란 광야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25장 1절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25:1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모여 그를 위해 애곡하고 라마에 있는 그의 고향에 묻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습니다.
바란 광야는 엔게디 광야보다는 더 남쪽으로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왜 그곳으로 갔을까? 25절에 기록된 바, 사무엘 선지자의 죽음과도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그나마 사울 왕이 두려워했던 사무엘 선지자가 죽게 됨으로 인해, 사울 왕이 더 자기 맘대로 행하며 다윗을 향해 더 극심한 핍박을 가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울 왕이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에게 한 발 물러서며 뭐가 더 이상 핍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았지만, 사울 왕이 또 다시 변심하여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다윗은 엔게디 광야 보다는 더 남쪽으로 바란 광야로 피신했던 것 같습니다.
바란 광야에 있던 어느 날, 다윗은 저 사해 근처 곧 바란 광야보다는 북쪽에 위치한 갈멜의 나발이란 사람에게 자신의 수하에 있던 열 명의 소년을 보냅니다. 그 이유는 나발에게 양식을 구하며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발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에 대한 성경은 기록은, 그는 부자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품은 인색하며 악하다고 기록합니다. 2-3절을 함께 봅니다.
25:2 마온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갈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1,000마리의 염소와 3,000마리의 양들이 있었는데 마침 갈멜에서 털을 깎고 있었습니다.
25:3 그의 이름은 나발이었고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갈멜 족속인 그 남편은 인색하며 하는 일이 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발은 굉장한 부자였다고 하며, 1,000마리의 염소와 3,000 마리의 양들을 소유한 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인색하며 악을 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 무엇을 하고 있었다 합니까? 2절 하반절에 보시면, “마침 갈멜에서 털을 깎고 있었습니다.” 라고 합니다. 양털을 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 나오는 바, “다윗이 광야에 있을 때 나발이 양털을 깎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양털 깎는 일이 대수로운 일인가? 왜 기록되어 있지? 조금 알아보니, 양털을 깎는 일은 당시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행사였다고 합니다. 양을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양털 깎는 날은 마치 농사를 하는 이에게 추수의 기쁨을 얻는 것과 같은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리고 있는 이 복에 감사함으로 양의 주인은 큰 잔치를 열어 그 동안 수고했던 목자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 심지어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양털 깎는 기간에,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발에게로 10명의 소년을 보내 양식을 얻기를 청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소년들을 보내 전했던 말을 보면, 다윗이 그저 손을 벌린 게 아니라 나발의 양떼를 위해 수고하고 도와줬던 것을 주장하면서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저 무턱대고 양식을 내놓으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수고한 값을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5-8절까지 다윗이 전했던 요청을 다 같이 읽어봅니다.
25:5 다윗은 열 명의 소년을 보내며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갈멜에 있는 나발에게로 올라가서 내 이름으로 그에게 인사하고
25:6 그에게 ‘당신이 장수하기를 빕니다. 당신과 당신 집안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또 당신의 모든 소유물도 평안하고 번창하기를 빕니다.
25:7 내가 듣기로 양털 깎는 기간이라고 하던데, 당신의 양치기들이 우리 쪽에 왔을 때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갈멜에 있는 동안 그 어떤 것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25:8 당신의 종들에게 물어 보면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소년들에게 잘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좋은 날에 왔으니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아들 같은 다윗에게 손에 닿는 대로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이다.”
다윗은 나발에게 도움을 구하기 전에 먼저 평안을 빕니다. 당신이 장수하기를, 당신과 당신 집안이 평안하기를, 당신의 모든 소유물도 평안하고 번창하기를 빕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이와 같은 복이 성은의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몸과 마음이 강건하고,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평안이 임하길, 손대고 있는 모든 사업과 일터, 소유에 번창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윗이 복을 빌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 안에서도 서로 서로를 축복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윗은 축복의 말과 함께 정중하게 문안인사를 하고, 떡과 물, 고기 등 양식을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나발의 양치기들이 다윗 쪽에 왔을 때 함부로 대한 적 없었고 늘 친절하게 대하며 주변의 적들이 양들을 해하려고 할 때마다 보호해 주었음을 언급합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도움으로 나발은 양떼 중 어느 것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러한지 알고 싶으면, 당신의 양치기들과 종들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요청을 듣고 나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다윗의 친절과 도움을 감사히 여기며 양식을 보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절합니다. 어떻게 거절했는지 읽어보겠습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25:10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대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자기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첫 반응이 “다윗이 대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이렇게 반문합니다. 정말 다윗을 몰라서 이렇게 말한 게 아닙니다.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다윗이 소년들을 보낼 때, “내 이름으로 그에게 인사해라.” 라고 했는데, 그 말 자체가 다윗의 이름을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 하반절 다윗을 조롱하는 말을 보더라도, 나발은 결코 다윗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반절에 “요즘 자기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라고 했는데, 이 말 자체가 다윗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입니다.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있다던데..’ 이 말은 사울 왕을 떠나 피신하고 있던 다윗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 된 사울 왕을 떠나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종 다윗을 빗대어 다윗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떠돌아다니는 신세라는 것을 알며 다윗의 존재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과 그의 무리가 나발의 양들을 돕고 지켜주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어 11절을 읽어봅니다.
25:11 내가 왜 내 빵과 물과 양털 깎는 사람들을 위해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
그리고 11절을 보시면, 나발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례하게 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내 빵과 내 물과 내 짐승의 고기를 다윗에게 주겠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이로 보아 그의 모든 것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나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과 은혜를 주셨기 때문임을 어리석게도 모르는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오늘 내가 숨쉬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모든 호흡부터, 먹을 수 있는 일용한 양식과 보람을 얻으며 일할 수 있는 것,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예배하고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나발은 전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니, 알았더라도 인정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안다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하나님께 드리기도 하고, 인색하지 않고 나누고 베풀어야 하는데 그게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내 것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을 수 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베푸신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11절을 보면서 나발이 얼마나 무례하게 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 쉽게 말해, 다윗 당신이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왜 당신에게 내 것을 줘야 하느냐입니다. 나발이 다윗의 출신이나 배경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이새의 아들이란 것도, 사울 왕의 사위이자 이스라엘의 천부장이었던 것도 다 압니다. 하지만 무시하고 조롱하고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발의 이런 말을 통해 나발이 어떤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은혜를 모르는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한 도움을 베풀어 양들을 지켜주었는데, 그것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선으로 갚지 아니하고 도리어 선을 악으로 갚는 모습입니다. 이로 보아 나발은 은혜를 모르는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홀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나 혼자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 나를 위해 말 한 마디라도 격려해주었던 사람들, 때로는 물질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도움과 은혜를 간직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나아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서로 돕고 연합하며 지내시길 바랍니다. 서로 인정해주고 세워주고, 감사를 표현하고, 박수쳐주고, 기도해주고 도와주며 지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연합한 지체라고 합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알아주고, 또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는 그런 관계와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다윗의 청을 거절한 나발처럼 하지 말아야 겠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위기의 순간을 맞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고난 중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주변을 포함해 저 멀리 세계 곳곳에도 도움을 줘야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부러 마음 문을 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긍휼과 자비를 기억하면서 손길을 뻗쳐 주의 이름으로 돕고 베풀고 나누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