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법정 소송이 웬 말인가
본문: 고전 6:1-6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 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살다보면 원치않게 수 많은 갈등과 오해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갈등이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든 생길 수 있으며 불화는 우리 인간사회에 어느 곳에서는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음행’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오늘 6장에서는 ‘법정 소송’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법정 소송’이 왠 말인가? (1절)
오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사이에 일어난 갈등을 놓고 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성도들이 문제해결이라는 방법을 ‘법정 소송’이라는 것을 통해서까지 해결하겠다고 하는 그 모습을 질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첫 시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 하느냐
성도들 사이에 발생한 다툼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앞에, 다시 말해 세상 법정에 가져 갔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란 작은 천국을 경험하기 위해서 교회에 모이는 것이고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 머리가 되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 성도 모두는 팔 다리가 되며 눈과 귀가 되며 세포 하나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런 공동체안에서 다투는 것도 모자라 서로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입니다.
2. 성도의 권세를 잊지 말자 (2,3절)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그 시대 법적 소송이 대 유행처럼 너도 나도 소송에 휘말리고 세상 사람들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다면, 이스라엘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세속 법정에 들어가는 유행을 쫒지 않았으며 이러한 논쟁 거리가 생기면 그 안에 가장 연장자들에 의해서 처리됐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의 우월성과 성도간의 문제는, 법 이전에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임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했던 비기독교적인 관습을 강력히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지위가 올라간 성도들은 더 이상 ‘불의한 자들 앞에서’ 재판받는 자기비하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을 범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2절과 3절에서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여기서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을 찾아보니 ‘자격이나 능력이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풀어서 말하면 ‘아주 사소한 일조차 판단할 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법입니다.
2절과 3절은 동일한 질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재림 때에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가운데 세상을 심판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 내부에서 일어난 지극히 사소한 사건조차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느냐?’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며 세상에 안 믿는 자들 뿐만 아니라 천사까지 심판하는 권세를 누리게 되는 고귀한 존엄을 가진 성도들이임을 다시 하면 상기시켜 주면서 성도들간에 일어나는 지극히 작은 문제들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이라는 것은 (앙겔루스) 모든 천사가 아닌, ‘악한 천사’즉, 타락하여 마귀가 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범죄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러한 ‘범죄한 천사들’까지 심판하는 왕 같은 제사장 그러한 신분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권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안심할 것은 천사들을 부러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라고 천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때문에 천사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영은 있으나 육체는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만이 영과 혼과 육체가 존재하는 실체로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4,5,6절)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사건이 정말 사소한 것이든지, 심각한 것인지 간에 성도들 자체 내에서 해결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되는 질문법으로 이어지는 4절과 5절에서 풍자적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발생한 분쟁을 중재해 줄 수 있는 지혜자가 그렇게도 없는냐고 책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4,5절)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4절에 나오는 ‘세상 사건’이라는 단어는 3절에 ‘세상 일’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부딪치는 ‘일상적인 일’, 다시 말해 ‘일상 생활 문제’인 재산, 상속 문제나 또는 사기 사건 등에 관한 요즘 말로 하면 민사 소송으로 ‘법정 소송’에 나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하고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신앙 공동체라면, 자기들 내부에서 일어난 분쟁에 있어서 만큼은 자체적으로 빨리 문제를 파악하여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교회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여기저기 끄집어 내어 일을 만들고 또 들추어 내는 사람이야 말로 신앙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임을 다시한번 콕 찍어 말하고 있습니다. (6절)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모법을 보이신 사랑의 교훈을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인 것이고 그것이 성경입니다. 때문에 저는 ‘성경’을 ‘성서’라고 격하하여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성경 즉 ‘캐논’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인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예수님의 말씀의 기준인 마태복음 5장 38, 39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다시 말해 하나님의 기준은 이 세상의 기준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계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계산이 끝이라고 하는 사람들 하고는 계산을 할 수도 계산 해서도 안 되겠지요.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생각과 판단과 계산과 분별 이 모든 걸 내려놓게 되면 세상 기준에서 보면 바보가 되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마지막 날에 불신자들과 타락한 천사들까지도 심판하는 권세를 누리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이미 세상이 지배하고 있는 대원리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secular law, God’s will)이라는 다른 논리 위에 건설된 법 체계속으로 들어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더욱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에 몸을 담고 있다면,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의 그릇된 것들을 심판할 때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을 것인가를 계산해야 합니다. 그것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때문에 악한 것에 대적하지 않는 것이며, 더군나 같은 공동체 안에서, 때로는 억울하게 해도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것이며,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에 나에게는 서운함이나 억울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신 것에서 한치의 오류가 없이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