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의 원칙
본문: 출 21:12-17, 23-25
찬송가: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14.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5.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1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7.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본 장은 앞서 살펴보신 대로 이번 출애굽기 21장도 시내 산 율법 조항의 일부분입니다. 특별히 오늘 보게 되는 율법들은 즉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에 관련된 것입니다. 실제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은 고대 국가들이 사회 질서를 위해 사용한 법인데요, 이는 해(害)를 끼친 만큼 해를 가한다는 보복률(Lex Talionis) 사상에서 나온 법입니다.
오늘 저희가 보게 될 출애굽기 말씀은 구약 성경 외에도 함무라비(Hammurabi)라는 법전에도 언급된 법입니다. 이 법의 목적은 타인을 보호하고 폭행과 죄를 줄이고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 주므로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날 현대인들은 합의를 봐서 어떤 문제를 금전적으로 해결한다거나 혹은 징역형으로 대처하고 있지요. 오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동해보복법은 하나님의 공의가 엄격하고도 정확한 실현과 사사로운 복수의 악순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국가적인 법의 제도가 없을 때 무자비한 손해나 인간의 보복형이 무자비하게 진행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형죄와 상해죄 또 배상 등의 시민법을 어떻게 구별하여 주셨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형죄에 관하여 (12절-15절) 사람이나 이웃을 죽였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을까요?
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14.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5.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십계명 중 제6계명의 규정에 살인하지 말라고 되었습니다. 살인이 비인간적 행위라는 도덕적 측면도 있지만, 살인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파괴함으로써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3,14절에서 고의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으며,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라는 말은 본의 아니게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오살자는 하나님의 율례에 의해 보호받지만 일정한 장소로 도피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 장소는 초기에는 하나님의 제단이 있는 성소 한 곳밖에 없었으나(14절) 후에는 도피성 제도로 발달하여 요단강 양편에 각각 세 곳씩 모두 여섯 성읍에 마련됩니다. (민35:10-15, 수 20: 1-9) 따라서 이 제도에서 우리는 살인이 살인을 낳고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의 연쇄 과정을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상해죄와 절도죄에 관하여 (16절-17절) 부모를 폭행하는 죄와 사람을 도적질하는 자
1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7.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십계명에서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부모가 공경의 대상인 이유는 첫 번째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가정생활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정에서의 부자 관계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학대하거나 살해한 죄는 살인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인간에게 주어진 제1의 계명임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17절 전반에 보시면 ‘사람을 납치하거나 사람을 팔았다’는 것은 원어적 의미로 볼 때 사람을 도적질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유괴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편 인신매매나 종으로 삼을 목적으로 사람을 훔치는 일은 고대 근동부터 현대까지 계속해서 저질러진 범죄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유괴죄에 대해 사형을 명시한 이유는 첫 번째로 타인의 생명을 도둑질한 자는 자기 생명으로 배상해야 하며, 두 번째로 유괴와 인신매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 17절 후반에 보시면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 여기서 저주한다는 것은 부모의 권위를 인정치 아니하고 부모를 멸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에 대한 제재(制裁) 율례입니다. 때문에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을 저주한 자와 똑같이 취급되어 사형을 했는데요, (레34:16) 이는 부모가 단순히 생명의 어버이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양육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18-36절까지는 피해 보상에 관한 법입니다. 12-17절까지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에 관한 범이 제시된 것이라면 18-32절은 이웃에게 신체상의 손상을 가한 경우와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 그 해당에 처벌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허물에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웃의 재산권 및 인권 보호라는 2대 목적을 둔 조치라 봅니다.
3. 동해보복법에 관하여 (23절-25절)
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것을 동해보복법이라는 것인데요, 같은 해를 입었을 때 같은 정도의 보복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눈 한쪽을 멀게 했으면 나도 눈 하나가 빠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남의 눈을 조심할 거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힘의 논리를 억지하는 것, 강자의 논리를 억지하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동해보복법은 보복과 복수의 권한을 인정하는데요, 이는 곧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구조에서 볼 때 정의는 약자 편에서 정의는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동해보복법은 개인적인 보복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복의 남용되거나 확신되는 것을 막거나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밖에서 누군가에게 한 대 맞았으면 너는 꼭 두 대를 때리라고 배웠고 두 대를 때리면 맞은 사람은 네 대를 때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이 되는 현상들을 우리 동네에서 늘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볼 때 범죄가 악순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해보복법은 한 대 맞았으면 한 대만 때리라는 것이 정의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뭐라고 하십니까? 한 대 맞았는데, 한 대 더 맞으라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것이 곧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다 함 없는 사랑이라는 적극적 차원의 온전한 새 법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마 5장 38-42)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원칙을 선포하십니다. (마 7장 12절)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하느냐? 거기서 부터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칙은 남을 대접하는 것,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관계와 질서가 시작되는 것이고, 회복은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피해를 본 적도 있고 피해를 입힌 적도 있겠지만, 혹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부족한 피해 보상이었다면, 기도해 드리고 또 어쩌면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 관계 회복이 되고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