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성은 일상의 말씀
HOME  |  오늘의 양식  | 성은 일상의 말씀


로마서 8장 26-30.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22년 7월 17일 김서윤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2-07-17 13:30    조회 2,472    댓글 0  
 
링크 https://youtu.be/bR5pD0w4atQ 1694회 연결

제목: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본문: 로마서8장 26-30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위선이다. (롬7장 24-25절)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 자신이 율법이 정답인 줄 알고 쫓았던 자신을 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출생에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이 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 빌립보서 3장 5-6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 합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전에 자신의 가문이나,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도덕성에 대한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기며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율법은 선하고 완전한 것인데, 왜 율법대로 안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련지요?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게 되는 걸로 착각하고 살다가 결국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위선적으로 억압적으로, 가시적으로, 또한 폭력적인 존재로 변하지는 않았나요? 결국,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애쓰는 자들은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시간 지켜내려고 애쓰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면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자신도 일평생 지켜왔던 율법주의자로써 자신도 그것들을 지킬 수 없음을 깊이 깨닫고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을 앞서 보았습니다. (롬7장 24- 25절)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잘 포장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리스도가 없다면 내 마음은 율법을 따라간다고 갔지만, 육신의 죄를 범하는 것, 육신이 날마다 넘어지는 것, 사망의 길에 놓였던 그를 사망의 그늘에서 건지신 이는 유일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환호하며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비교할 수 없는 영광 (롬 8장 18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 삶 가운데 고통의 시간을 겪는 것은 그 고통의 끝에는 반드시 영광의 순간에 이르게 됨을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란 고난이란 관점을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해서 볼 때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사람들임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고난을 피 할 때 우리는 고난 속으로 뛰어드는 까닭은 그 고난을 통과해야만 영광의 순간을 맛보게 됨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고난의 영광과 무게와 그 깊이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롬8장 18절)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네,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교하지 못합니다. 비교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교할 근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고난을 장차 다가올 영광과 맞바꿔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이 신앙의 길을 가다가 중간에 떠나보냅니까? 고난이 닥치면 이 고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3. 피조세계가 인류의 회복을 갈망하다. (롬8장 19절, 21-22절)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진리와 생명과 희망이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맛보며 살기에 온 우주 만물까지도 인류의 구원을 갈망하고 있음을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원치 않은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고 선악과를 먹었더니 우리는 오히려 죄 가운데, 고통 가운데,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는 온 땅을 다스리라고 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어야 할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땅도 동물들도 식물들도 결국 죽음 속으로 원치 않게 끌려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때문에 피조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나타나기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고 사도 바울은 온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롬8장 19절, 21-22절)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인간이 회복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구원 받았을 때 비로소 피조세계 전체가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지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프로젝트이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운동권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닌 환경론자의 이슈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왜 지구가 병들고 있습니까? 왜 바이러스가 창궐합니까? 왜 빙하가 녹아 내립니까? 왜 엘리뇨 현상이 일어납니까? 왜 지진들이 우리를 뒤흔듭니까? 왜 오존층이 깨어집니까? 제가 살았던 오세아니아 주는 이미 오래전에 오존층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피부암이라는 병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두가 인간과 함께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 피조세계 전체는 그 누구보다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 (롬8장 24-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우리가 눈에 보이면 이 세상에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은 보이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하신 그분 안에 평안히 거하는 것, 보이지 않는 소망을 인내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조급함 때문에 믿음을 헤치고 소망을 놓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게 하려고 기다리게 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5. 성령님의 도우심 (롬8장 26-27절)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와 여러분들은 위로를 받게 되며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성령님이 늘 우리의 탄식과 간구까지도 알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롬8장 26-27절)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가끔은 기도 자리에 앉았는데 기도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 하나님만 부르짖는 것만으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며 근심하는지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6.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장 28-30절) 

 

그분의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보호안에 그분의 품에 그분의 울타리 안에 보호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롬8장 28-30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 즉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과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사도 바울은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오늘 우리는 '나는 창조된 사람 아담인지, 혹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 아브라함인지' 되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된 사람은 자연인으로서 희망이나 소망이 없으며 본능적으로 죽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희망이 있으며 누가 나를 불렀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면 나의 아버지, 그분을 닮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곧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창세기12장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보이지 않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그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았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버지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버지께서 부족한 나를 통하여 어떤 일들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에 있음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부르신 곳에 응답하며 영광스러운 자리로 가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과정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늘의 양식
성은 일상의 말씀
강남성은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강남성은교회
02)568-8361
02)555-7857
khgc74@gmail.com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강남성은교회 | 담임 : 이성민 목사
주소 : (06280)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391길 25(대치동 645)
TEL :02-568-8361 | FAX : 02-555-7857 | E-MAIL : khgc74@gmail.com
Copyright ©2013~2024   sungeun.org. All Rights Reserved.
02)568-8361
02)555-7857
khgc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