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
본문 : 창 12:1-7
찬송가 :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1. 한 사람을 택하시다. (1절)
창세기 11장과 12장은
분기점을 이룹니다. 마치 전체를 조명하고 있다가 어느 한 사람에게 카메라로 줌인하고 들어가게 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이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시고자 합니다. 창세기 11장까지는 우리가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죄가 만연하는 이 현실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홍수 대 심판으로 노아의 한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노아의 자손도 큰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을 보게 되죠. 함의 자손을 통해서 또 죄악이 관용하고 죄악이 급속히 팽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그 화려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사람을 불러내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새로운 믿음의 행진, 새로운 믿음의 역사,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지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 입니까?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야곱이 택함을 받습니다. 에서가 장자예요. 세상에 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했다고 합니다. 왜
조카 롯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까? 왜 여러분이 아닌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모릅니다. 그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오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갈대아 우르의 한 소상공인, 한 사람을 부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에 선뜻 반응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1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대뜸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가라” 우리말은 이렇게 두 단어로 나오지만 영어는 심플 합니다. “GO! 가라”고 합니다.
여러분, 현재를
떠나야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과거와 단절이 되어야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다 껴 앉고 데려 가 달라고 청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걸 끊어버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것만 같은 일 아닙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기호식품 하나만 끊으라고 해도 죽을 거 같은데,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환경, 이때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두고 떠난다? 이런
결정을 해 보셨습니까? 그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족보에 편입시키는 방법입니다. 믿음의 족보를 새롭게 만드시는 방법이 이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내 의지나 내 경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2.“You will be a blessing! 넌 복이 될꺼야!” (2. 3절)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하는 데요, 더 이상 이제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임을, 불안해하지 말라고 무지개를 걸어 주셨듯이,
아브라함에게도 무지개와 같은 약속을 보여주신다는 것이죠. 첫번째로 약속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 두번째 약속은 네 이름을 창대
할 테니 네 이름이 어마어마하게 유명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은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이런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은 어쩌면 하루 세끼 끼니 걱정은 없는 그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라고 하시는 거죠. 여러분, 지금 아브라함은 사래와 결혼하여 살지만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습니다. (창11장 30절) 아들 하나 없는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까요?
어쩌면 아들 하나 얻는 것이 그들에겐 기쁨일 텐데, 그들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름이 어마어마하게 유명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온 인류의 절반 이상이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랍니다. 무슬림이 되었건, 유대교가 되었건,
기독교가 되었건 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랍니다. 이런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무슨 약속인지 그
속뜻을 알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몰랐습니다. 알 수 없는 약속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영어NIV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You will be a
blessing.” Are will being bless you. 도 아니고 You will be
blessed도 아닌 “You will be a blessing! 넌
복이 될꺼야!”
여러분, 인간이
참 복 때문에 바벨탑을 쌓는 게 아닙니까? 복에 목이 말라 큰 회사를 만드는 게 아닙니까? 복에 목이 말라 나라와 민족을 만드는 게 아닙니까? 강렬한 지배
구조, 대 제국 건설, 이 모든 것들이 내 이름을 크게 내고, 마치 하늘에 닿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하는 일들은 아닐련지요?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너는 네 자신이 네 자체가 복이
될 것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이 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 입니까? 내가 더 이상 복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복에 목마른 사람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 설명이 바로
3절에 있는 것입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너는 복이야. 복이 될거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새롭게 태어나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누구든지 나를 저주하면, 그 사람이 저주를 받고, 그 사람이 나를 축복하면, 그 사람이 축복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여러분을 저주하든지 축복하든지 괜찮아야 합니다. 왜냐구요? 그들이 여러분들을 저주하면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복으로 만드는 이유는 더 이상 복과 저주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자유롭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인간관계로 묶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풀어주시고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할 것도 없고 거기서부터 풀려나는
게 자유의 본질입니다. 더 이상 내가 누구로부터 덕을 얻고, 누구로부터
내가 손해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늘 묶여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것, 내 미래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는 삶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더 이상 미래에 불안해하거나 궁금해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You will be a blessing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의 근원,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복이 흘러가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4,5,6절)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200세까지 살았던 것을 감안해 보면 요즘 나이로 계산해보면 42살이라는
것입니다. 42살이면 그때가 인생의 클라이맥스 아닙니까?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 아닙니까? 인생의 절정, 자신감이
넘칠 때, 정년퇴직이 아닌 나이 들고 근력도 떨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떠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피크 때,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향과 지시대로
따르고 결정한 것입니다.
자, 이제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떠났지만, 조카 롯은 아브라함만 믿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갈
수 있는데, 사람을 따라 가는 사람은 반드시 시험 들게 됩니다. 중간에
탈락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롯은 삼촌인 아브라함을 따라 갔기 때문에 나중에 삼촌하고 헤어집니다.
시험거리, 불평불만, 사람얘기만
듣고 사람 때문에 시험 들어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하다 하란에 머물러 있었고, 자칫하면 하란에 주저 앉을 뻔했을 수도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옮기는 제2의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것이 믿음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그 땅까지 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로 갈 때 하나님께서 정상까지 보여주셨으면 정상까지 가야
합니다. 칠부능선에서 돌아서서 다시 걸어 내려오거나, 여기가
좋다고 생각하여 머물러 앉아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렵지만, 힘든
결정이지만 다시 떠나야 하는 겁니다. 믿음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도착해 보니 가나안 땅에 이미 거주민들이 있었습니다.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등기부등본에 올려놓고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현실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붙들고 와 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어, 내가 잘못 왔나? 음성을
잘 들었나?” 이런 불안감과 좌절감과 회유가 나타날 때쯤 하나님이 다시한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 제단을 쌓는 삶 (7절)
7. (전)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 하십니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 땅이 어떤 땅입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는 땅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믿음의
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이 그냥 무주공산이어서 내가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어떻게 주실 지 전적으로 맡겨 놓고 주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믿음을
안고 떠나는 우리의 길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현실입니다.
말씀만 듣고 왔는데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얼마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겠습니까? “하나님 내가
가는 믿음의 길이 고작 이런 길 입니까? 내 자손에게 이 땅 주시려고 나를 이런 곳에 오시게 하신 겁니까?” 그런 원망이 들법도 한데, 아브라함은 그때 또 한 번 뭐를 선택한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행동을 합니다. 그게 뭡니까? 7절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7. (후)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이것이 창세기의 11장 전과 12장 후로 갈라진 성경의 분기점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제일 먼저 제단을 쌓는 삶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벨탑을
쌓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과 탐욕을 꺾고 하나님께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단을 쌓는 삶으로 바꾸는 것, 이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내 이름을 내고 바벨탑을 높이 쌓아서 이게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을 불러 내셔서
이 바벨탑을 쌓아가야 할 이 인간에 문명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을 쌓는 삶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구원이요, 이게 은혜요 이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는 것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또다시 저와 여러분을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