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본문: 창 19:24-29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오늘도 새벽예배에 나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면 그 죄악이 심히 무거워 하나님의 유황불로 인해 멸망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름다웠던 땅, 소돔과 고모라
그러나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원래 어떤 땅이었습니까? 지난 창세기 13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는,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두고 선택하여 나누어 가지었을 때, 소돔과 고모라는 롯이 먼저 선택한 비옥한 땅이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3장 내용을 잠깐 요약을 해드리자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가 되었고, 그와 함께 따라다니던 조카 롯도 삼촌을 따라다니다가 덩달아서 부자가 된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양 떼와 소 떼, 그리고 식솔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들이 함께 사는 땅이 비좁아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툼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상황을 놓고 결국 아브라함이 결정을 내립니다.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우리 따로 떨어져 살자. 먼저 선택해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로,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그 말을 듣고 롯이 좌우를 살핍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그곳이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그 잘나가는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성경은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옥하고 아름다웠으면, 그 지역이 마치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동산 같았다고 표현을 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죄의 본성이 깨어나는 겁니다.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할 만큼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그런 곳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롯은 그 좋은 땅을 삼촌이자 어른인 아브라함에게 양보를 했어야 합니다. “아니! 제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도 삼촌 덕분인데 먼저 고르시지요!” 그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옥한 땅을 먼저 택해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당장 저희의 눈엔 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땅이 될 수도 있고, 집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계획과 비전이 그런 것들이 보기 좋은 것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기억하고 점검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왜 싸움이 났을까요? 자기 눈앞에 이익을 놓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롯은 그렇게 점점 세상의 이익만을 바라보게 되었고,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의 해결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그 둘로 하여금 멸망의 자리와 구원의 자리로 나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양보를 하고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되갚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롯이 떠나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서 있는 곳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너 밟는 곳을 다 주겠다.”
결국 요단 건너 비옥한 그 땅은 전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악한 마음으로 유익이 있었던 것은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도록 역사하시는지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인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에서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많은 유혹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고, 멸망의 자리가 아니라 구원의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
그런데 그 세상의 유혹에 대해 미련을 떨쳐내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 2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마음속에 간직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롯의 아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에 있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돌아본 것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해 근처에는 롯의 아내로 전해지고 있는 특정한 소금 기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저도 궁금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소금 기둥을 보면서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우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정말 살기 좋은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살핌이 없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쾌락을 좋아하고 타락했었는지,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것보다 구원하시기를 원해서 살펴보시는데, 의인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 몇 명만 있어도, 처음 50명에서 45, 40, 30, 20, 마지막에는 단 10명만 있어도 구원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의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말에 가까워질수록 성경의 예언은 그리고 많은 설교자들은 세상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곤 합니다. 우리도 그런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의인이 없습니다.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고, 그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소금기둥이 된 아내와 같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불빛을 향해서 걸어가 본 적 있으십니까? 그 불빛을 향해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바로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눈앞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 어둠을 바라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멀어지고자 하지만, 실은 그런 것들이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진 않습니다. 바로 곁에서, 늘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언제든지 우리를 집어삼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소금 기둥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사실 도시에서 좀 떨어져서 이미 산을 오르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잖아요? 그 죽음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둠이 항상 나의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세상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놓여진 정말 중요한 선택지인 것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해주옵소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고백으로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실패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고,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믿는 자의 간구
2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겐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는 미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 가족, 형제, 자매, 이웃 등등... 창세기 18장 말씀을 보면 저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의인도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우리는 흔히 이런 기도를 많이 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또 이것이 꼭 그런 기도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간구를 흘려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롯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보다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건져내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되지만, 제가 봤을 때 롯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 바람직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다툼이 생긴 것도 그렇고, 좋은 땅을 먼저 골라간 것도 그렇고, 하나님의 사자를 상관하려 온 자들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는 인간적인 방식도 그렇고 우리가 생각하는 의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를 참으셨습니다. 롯이 나가기까지 심판을 미루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간구를 들으시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도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여러 기도제목도 함께 가지고 나오셨을 겁니다. 특히 가정을 위해, 직장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런 여러분의 간구를 기억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취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의 간구로 하나님의 진노가 늦춰지고,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의 기도의 대상이 되는 그 영혼을 품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의 간구를 들으시고 기억하셔서, 저들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건지시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믿음으로 간구하고 승리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