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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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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4장 3-5절.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김(24년 8월 7일, 서정원 부목사)  
   성은교회   작성일 24-08-06 22:44    조회 277    댓글 0  
 

사무엘상 4장 3-5절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김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4:3 군사들이 진영에 돌아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배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실로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자. 그 궤가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 적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4:4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실로에 보냈고 그 사람들은 그룹들 사이에 계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언약궤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그곳에 왔습니다.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모든 이스라엘이 땅이 흔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김” 이와 같은 제목으로 사무엘상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의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벡 전투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패배하게 되고, 사상자가 무려 4천명 정도 나왔다고 합니다. 


1-2절을 읽어봅니다. 


4:1 그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벤에셀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사무엘이 하는 말은 모든 이스라엘이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4:2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했고 그 싸움터에서 죽은 군사가 약 4,000명 정도 됐습니다.

1절에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벤에셀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두 군대는 싸우게 되었는데, “그 싸움터에서 죽은 군사가 약 4000명 정도 됐습니다.”라고 하여, 이스라엘은 매우 크게 패배했던 전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어떤 태도와 방법을 취하였을까요? 패배한 사실을 두고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그 말씀이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4:3 군사들이 진영에 돌아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말했습니다.“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배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실로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자. 그 궤가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 적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패배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굉장히 신앙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안 도와주셔서 패배하게 하셨는가?’원망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어떻게 하자고 합니까? 언약궤를 가져오자는 것입니다. “실로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자. 그 궤가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 적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습 역시 언뜻 보면, 신앙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그것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가지고 오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겉 모양은 가로 120, 세로 70, 높이 70정도 크기의 상자인데, 궤 안팎으로 금이 덮여 있고, 그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지고 오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행진 중에도, 전쟁 중에도 언약궤와 함께 했었습니다. 


관련말씀으로 민수기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출발하여 길을 가는 동안 언약궤가 앞서 갔다는 기록이 있고, 언약궤가 이동하고 멈추고 할 때, 하나님도 함께 이동하고 멈추는 것으로 여겼던 모세의 기도가 있습니다. 민수기 10장 35-3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민10:35 언약궤가 길을 떠날 때마다 모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당신 앞에서 당신의 원수들이 흩어지고 당신의 적들이 달아나게 하소서.”

민10:36 그리고 쉴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천만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돌아오소서.”


보시다시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중심으로 행동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에 대한 믿음은 여호수아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도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도 언약궤와 함께 했습니다. 여호수아 6장 6절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도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6:6 그러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는 언약궤를 메라. 일곱 명의 제사장이 일곱 개의 양 뿔나팔을 들고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라.”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전의 역사를 생각하며, 당시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진영으로 갖고 와서, 다시 블레셋 군대와 전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장로들이 놓친 것은 무엇입니까?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지, 궤 자체로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언약궤가 있냐 없냐가 승패를 결정 짓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점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바른 신앙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언약궤가 있기만 하면, 승리가 보장될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을 실로에 보내 언약궤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진영에 도착하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아마도 언약궤의 존재로 든든한 마음이 들고, 다음 번 전투에서는 승리를 얻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4-5절입니다.


4:4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실로에 보냈고 그 사람들은 그룹들 사이에 계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언약궤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그곳에 왔습니다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모든 이스라엘이 땅이 흔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언약궤의 입성과 함께 이스라엘의 함성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블레셋 사람들은 그 함성소리를 듣게 되고,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 사실로 인해 두려워 떱니다. 


7절을 봅니다. 


4:7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그들의 신이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했다.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이제 화가 미치겠구나.


블레셋 사람들이 왜 두려워 떨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고, 이제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도우실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저 그런 신이 아니라 익히 이집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린 막강한 신이라고 여겼기에 더더욱 두려워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2차 전투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움에 위축된 블레셋 사람들을 모조리 격퇴시켰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언약궤의 입성이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의기투합하게 하고, 전투에 앞서 더 전의를 불태우게 합니다.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이 사생결단의 죽을 각오를 하고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다시 2차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4:10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이 싸움에 임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패해 저마다 자기 진영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싸움의 패배로 이스라엘은 3만 명의 군사를 잃고 말았습니다.


똘똘 뭉친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패배하게 되었는데, 1차에서는 4000명의 사상자가 나온 반면 2차에서는 무려 3만명의 군사가 죽게 되는 대참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기까지 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11절입니다. 


4:11 이때 하나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던 잘못된 신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갖고 온 것이 진정한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언약궤로 상징되는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그릇된 신앙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속 깊은 중심과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언약궤를 진영으로 갖고 오는 마음의 동기까지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 보면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닌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인 종교행위에 치우친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언약궤만 다시 갖고 오면 돼.’ 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의식에 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들을 진실하게 들여다 보는 신앙의 자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이 종교 행위를 했다고 스스로 속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예배 참여, 헌금과 봉사, 성경 읽기와 기도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정성 중심이 빠져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모양과 더불어 진실함을 항상 잊지 않는 저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또 하나, 자칫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재의 상징 언약궤 자체에 대한 미신적인 신앙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비슷한 잘못을 범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그러한 잘못을 범할 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사 기드온이 만든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금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그 에봇을 우상처럼 섬긴 적도 있었고,  남유다 사람들이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우상처럼 섬긴 적도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신앙의 상징이 되는 것들을 단순히 귀하게 여기는 걸 넘어, 신성시 하면서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어떤 신앙의 심볼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며 미신적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바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게 되길 원하실 줄 믿습니다. 기복적인 신앙도 아니고, 미신적인 신앙도 아니고, 종교적으로 치우쳐서 외식하는 신앙도 아니고 바른 신앙으로 주님과 관계 맺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예수를 의지하며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섬겨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 중심과 삶을 돌아보며 바르게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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