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요나단의 믿음
본문: 사무엘상 14:1–6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자녀를 위한 기도회 3일 차
사무엘상 14:1–6 DKV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쪽 편 블레셋 초소로 가자.”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2 사울은 기브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600명쯤 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3 그 가운데는 에봇을 입은 아히야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증손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요나단이 나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4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에 가기 위해서는 길목 양쪽에 서 있는 험한 바위들을 건너야 했습니다. 하나는 보세스라 불렸고 다른 하나는 세네라 불렸습니다.
5 그 가운데 한 바위는 믹마스를 향해 북쪽에 서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게바를 향해 남쪽에 서 있었습니다.
6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어가기
가을학기 맞이 자녀와 수험생을 위한 새벽기도회 세 번째 날입니다.
부모라면 늘 자녀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앉으나 서나, 자녀 생각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을 넘어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녀를 위해서 무엇을 놓고 기도할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문 배경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긴장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울 왕의 지도 아래 있었고, 블레셋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크게 열세에 있었고, 블레셋에 비해 군사적 준비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이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요나단이 놀라운 결단을 합니다. 적진으로 직접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4:1 DKV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쪽 편 블레셋 초소로 가자.”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울의 상태
사무엘상 14:2–3 DKV
2 사울은 기브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600명쯤 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3 그 가운데는 에봇을 입은 아히야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증손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요나단이 나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집무를 보고 있었거나, 사사들처럼 재판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과 함께 있는 사람 때문에 그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사울 왕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멀어진 상태였고, 사무엘로부터도 버림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보다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버텨보려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심리 상태는 사울이 나중에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게 되는 사건(삼상 28장)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점이나 주술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아히야
그런 사울 곁에는 아히야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아히야는 엘리 제사장의 증손으로, 엘리 가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가문이었습니다
사무엘상 3:12–14 DKV
12 그때 내가 엘리의 집안에 대해 말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룰 것이다.
13 내가 엘리의 집안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말한 것은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스스로 벌을 청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안을 두고 ‘제물이나 예물로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라고 맹세했던 것이다.”
엘리 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3:13–14 DKV
13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행동을 했소.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소. 그렇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당신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오.
14 그러나 이제 당신의 나라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그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우셨소.”
그리고 이제 그 제사장이 사울과 함께 있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제사장과 버림받은 왕이 함께 있다는 것은, 사울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아히야의 존재는 사울의 영적 상태를 더욱 암울하게 보여줍니다.
요나단의 결단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요나단의 결단이 빛을 발합니다. 요나단은 자신과 무기를 든 청년 한 명만 데리고 적진으로 들어가겠다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했습니다.
사무엘상 14:4–5 DKV
4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에 가기 위해서는 길목 양쪽에 서 있는 험한 바위들을 건너야 했습니다. 하나는 보세스라 불렸고 다른 하나는 세네라 불렸습니다.
5 그 가운데 한 바위는 믹마스를 향해 북쪽에 서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게바를 향해 남쪽에 서 있었습니다.
지도
지형상 요나단의 계획은 불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블레셋과 요나단의 부대 사이에는 깊은 협곡이 있고, 각각의 부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데, 하나는 보세스요 하나는 세네였습니다. 서로 볼 수 있는 곳에 거리상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의 거리인데, 그곳에 걸리지 않고 건너가겠다는 요나단의 계획은 무모할 정도로 위험했고,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행동에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가 아니라,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
사무엘상 14:6 DKV
6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요나단의 정말 멋진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믿음을 갖고 살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울처럼 계산과 운에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녀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요나단의 행동에 따른 결과
요나단은 적진에 그냥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무엘상 14:9–10 DKV
9 만약 저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갈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하면 올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10 그들이 ‘우리에게로 올라오라’고 하면 우리가 올라가자. 이것을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시겠다는 표시로 삼자.”
요나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적진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가 가졌던 믿음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나 용기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적군은 요나단과 그의 청년이 무기 하나씩을 들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아마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인간적인 계산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사무엘상 14:14–15 DKV
14 이 첫 번째 공격에서, 한 쌍의 소가 반나절 동안 갈 만한 땅에서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부하 청년이 죽인 사람은 약 20명쯤이었습니다.
15 그러자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의 군인들과 특공대들도 모두 떨었습니다. 땅까지 뒤흔들리며 하나님이 보내신 공포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14절 말씀을 보니 요나단과 무기를 든 청년 단 2명이 블레셋 진영에 들어갔는데, 몰래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서 적군을 20명을 물리쳤습니다. 한 쌍의 소가 반나절 동안 갈만한 땅의 크기는 대략 0.5에이커로 평수로 환산하면 600평 정도 되는 면적입니다. 그곳에 20명의 군인을 죽였을 뿐이었는데, 단 두 사람이 이룬 이 승리는 단순히 숫자로만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요나단의 공격은 그 자체로는 크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블레셋 진영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15절 말씀 그러자, 모든 블레셋 진영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두려움은 단지 인간적인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땅까지 뒤흔들리며 하나님이 보내신 공포에 휩싸이게 됐습니다"라고 묘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여 블레셋 군대에 공포를 주셨고, 그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과 결단이 촉발한 이 사건은 결국 블레셋의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결론: 자녀를 위한 진정한 기도와 믿음의 유산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사울과 요나단, 두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계산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과 멀어진 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 했습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인간의 힘과 숫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온전히 신뢰하며 담대하게 행동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 말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학업에서 성공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녀들에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하며,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할 방법들을 알려주려 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은 잠깐입니다. 사울처럼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다면, 그 끝은 불행과 파멸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만 자녀를 돕는다면, 그 도움은 그 순간을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도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몸소 신앙의 삶을 그들에게 전한다면,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야 말고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이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자녀들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이끌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단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자녀를 위한 기도회를 통하여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그리고 우리 강남성은 모든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