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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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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장 1-4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24년 9월 1일, 김성훈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4-08-31 21:46    조회 269    댓글 0  
 

본문 말씀 : 느헤미야 11-4

본문 제목 :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먼저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느헤미야 이전 상황은 바벨론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하고 드디어 포로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지도자로 한 1차 귀환이 이루어지며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80년 후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한 2차 귀환이 이루어지며 신앙을 개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2차 귀환 후 약 13년이 지나고 느헤미야가 3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느헤미야 1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느헤미야 11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느헤미야는 먼저 수산 궁에 있을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산 궁은 페르시아 왕이 있는 곳으로 느헤미야는 궁에서 일하는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그의 직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11절 후반을 보시면

 

느헤미야 111b

11b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그는 왕의 술 관원으로 일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술 관원은 말 그대로 왕이 마실 술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그리 대단한 직업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술 관원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면 술 관원은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을 타게 된다면 왕은 생명을 잃기에 자기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생명을 맡길만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술 관원은 때론 군사령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였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나라 입장에서 느헤미야는 포로 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신임을 받는 자리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이것을 인생 역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느헤미야의 노력만으로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고 그는 위대한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상황에 맞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실 계획안에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그 자리에 올라가 위대한 인물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느헤미야뿐만 아니라 현재 나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셨다면 느헤미야처럼 온 맘 다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결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세계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라면 각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느헤미야처럼 위대한 인물로 쓰임 받는 성도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회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뜻을 가족 안에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분이 한 아이의 엄마로 아빠로 할머니로 할아버지로 그리고 가족으로 계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느끼시고 그 사랑이 아이에게도 흘러넘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믿음의 가장이라면 가족의 복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단순히 자기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게 되면 내 아들과 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실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인물로 사용하실 것이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감히 내 생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노예 신분으로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총리가 되었으며, 갈대로 엮은 바구니에 버려진 아기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킨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아이로 키워나가는 것이 단순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아이가 하나님의 뜻 합당하게 쓰일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위로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2-4절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2-4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가 3차 귀환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루살렘을 다녀왔던 하나니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느헤미야에게 전해줍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으로 두 번의 귀환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성전은 완성되었지만, 성벽은 여전히 무너지고 불타고 사방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의 모습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입장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으며 포로로 끌려온 경험도 없었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한 후 140년이 지나서 느헤미야는 오늘 성벽이 무너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민족의 고향일지라도 남 일처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씁쓸하고 안타까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어제 남유다가 멸망한 일처럼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자기 삶에서 꼭 이뤄내야 일처럼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이스라엘 민족을 마치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영원히 떼어 놀 수 없는 운명 공동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관련된 구절 고린도전서 1226절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느헤미야는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할지라도 마치 내 몸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헤미야가 운명 공동체로 인식했던 생각은 현재에도 계속해서 기독교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공동체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이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라서 잘 키우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 한 명이 커가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필요한 것인데 그렇다면 한 명의 신앙인으로 커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교회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227절과 로마서 1215절에서는

고린도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각 지체로써 교회 안에서 영적 공동체이며 한 몸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공동체는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에서 누군가를 위해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요즘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며 통계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성도와 젊은 세대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원인이 혹시 이러한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닌지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주위를 한 번 돌아보셔서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을 위해 느헤미야처럼 슬피 울며 금식하는 심정으로 기도하시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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