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9장 4-6절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19:4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앞에서 다윗에 대해 좋게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종 다윗에게 실수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는 왕께 잘못한 일이 없고 오히려 그가 한 일은 왕께 큰 덕이 됐습니다.
19: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블레셋 장수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왕께서도 그것을 보셨고 또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 이유도 없이 다윗처럼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19: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네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마. 내가 다윗을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
오늘 이 시간에는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 이와 같은 제목으로 사무엘상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들레헴의 한 소년 다윗에게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는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하나님의 종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 집에 와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들을 만나러 간 전쟁터에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찌르게 되는 엄청난 일까지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의 군대의 천부장이 되어 살아가는데, 나가는 전투마다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윗은 사울 왕의 사위까지 됩니다.
양을 치는 한 소년이 한 나라의 왕의 사위까지 되는 다윗의 인생을 보면서,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변할 수 있지?”이런 인생이 또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다보면, 찬란할 것 같은 다윗에게 그 누구도 견디기 힘든 고난이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바로 사울 왕에 의한 살해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갑자기 급부상하는 다윗에게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넘볼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울 왕이 했던 말을 한 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8장 8절의 말씀입니다.
18:8 사울은 이 노랫소리를 듣고 몹시 불쾌해 화가 치밀었습니다. 속으로 “다윗에게는 수만 명이라더니 내게는 고작 수천 명뿐이라는구나. 그가 더 가질 것은 이제 이 나라밖에 더 있겠는가? 하며
사울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찬양하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사람은 수천명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수만명이라네!”그런데 여기서 사울은 화가 납니다. 사울이 죽은 사람은 수천명이지만, 다윗은 그보다 많은 만만을 죽였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견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 그가 더 가질 것은 이제 이 나라밖에 더 있겠는가?” 자기의 왕위가 위협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어떻게 다윗을 죽이려 합니까? 직접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이지는 못했었고, 블레셋과의 전투에 내보내 전투 중에 죽게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사울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살아서 복귀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사울의 위협과 수많은 죽을 위험과 고난 속에서 다윗이 살 수 있었을까요? 어떤 이유로 전투 가운데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관련된 말씀 사무엘상 18장 14절과 28절을 읽겠습니다.
18:14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18:28 여호와께서도 다윗과 함께하시고 자기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셨고, 다윗을 도우셨기 때문에 고난을 다 이기며, 더 형통하고 더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 가운데 존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이 가장 귀한 인생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성공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인생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함이 가장 복된 것임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때마다 일마다 매순간 주님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주님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서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19장의 말씀을 보게 되는데, 1절의 말씀을 먼저 읽어봅니다.
19:1 사울은 자기의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울은 직접 자기 손으로도, 블레셋 사람들의 사람들의 손으로도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계속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1절에 의하면, 자기의 아들이었던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을 불러다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이 말은 단순히 다윗에 대한 살해 계획을 알려준 게 아니라, 요나단과 신하들로 하여금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 이와 같은 상황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사울의 명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을 비밀리에 만나 자기 아버지 사울의 계략을 알려줍니다. 다윗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다윗으로 하여금 은밀한 곳에 숨어 있도록 지시합니다. 19장 2-3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19:2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내 아버지 사울 왕이 자네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계시니 내일 아침 조심해서 은밀한 곳에 숨어 있게.
19:3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자네가 있는 그 들판으로 나가 자네에 대해 얘기하다가 무엇인가 알아내면 이야기해 주겠네.”
지금 요나단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다윗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사울이 자기의 아버지이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다 해도 아버지 사울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다윗을 죽이라 하는데, 다윗을 돕고 다윗을 살리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이 이처럼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다윗을 돕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과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씀, 사무엘상 18장 3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둘은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다윗은 참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바쳐 자기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저와 성도님들 가운데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친구 말고, 요나단과 같은 남편과 아내, 요나단과 같은 부모와 자식, 요나단과 같은 동료, 요나단과 같은 교우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다윗에게 요나단이 있고, 요나단에게 다윗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가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위급할 때, 슬플 때 돕고 기도해주며, 서로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랑의 관계가 있길 바랍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실 때, 서로 사랑하는 교회와 공동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특히 다윗을 위해 생명을 걸고 돕는 요나단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사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죗값을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희생이며 사랑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귀한 친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장 귀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늘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4-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9:4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앞에서 다윗에 대해 좋게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종 다윗에게 실수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는 왕께 잘못한 일이 없고 오히려 그가 한 일은 왕께 큰 덕이 됐습니다.
19: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블레셋 장수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왕께서도 그것을 보셨고 또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 이유도 없이 다윗처럼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요나단은 다윗을 비밀리에 찾아가 사울의 음모를 다 알려주며 그를 돕겠다고 약속한 후, 이제 아버지 사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윗을 두둔하며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도무지 다윗은 왕께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울 왕과 이스라엘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이는 공을 세우며 나라를 구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공만 있지 죽일 죄가 아무 것도 없음을 주장합니다. 또한 사울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다윗을 죽이는 것은 큰 죄를 짓는 일이라며 다윗을 죽이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시면, “그래서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나라를 구해주셨음과 다윗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주의 종임을 말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종이라 말함으로 요나단은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다윗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명확하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정과 계획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나의 삶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봐야 할 줄 믿습니다.나의 계획과 결정들이 혹시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인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혹여라도 주 앞에서 후회할 만한 행동이 되지 않도록 점검을 해야 합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못하도록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도록 삶을 주의깊게 살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6절을 봅니다.
19: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마. 내가 다윗을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을 변호하는 말, 다윗을 죽여 죄를 짓지 말라는 강력한 호소를 들으며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내가 다윗을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 이 말을 과연 지켰을까요? 네. 사울은 지킵니다. 그래서 다시 사울 왕 앞에서 다시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서를 계속 읽어가다보면, 사울 왕이 이 약속을 그대로 지키지 않음을 봅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악한 영이 다시 사울 왕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기 때문입니다.
강남성은교회 여러분, 우리는 주 앞에서 마음을 바로 잡고 주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때때로 여러 유혹에 다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악한 영이 우리를 꾀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 밖으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가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믿음으로 설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고난을 만나지만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친구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의형제를 맺고 다윗 곁에서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해주고, 적극적으로 사울 앞에서 다윗을 변호해 주었습니다. 우리 삶에 이런 친구, 동료,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동역자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친구를 구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친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늘 너그럽고 사랑으로 품어주며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누자면, 우리에게는 요나단보다 더 귀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누구냐?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내어주며, 날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사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며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에서 찢긴 살과 흘린 피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면서, 또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교통하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