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에 실수 없는 자
본문: 야고보서3:1-12
찬송가: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야고보서 3:1-12 KRV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오늘 주신 말씀은 혀를 어떻게 길드리며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으로
기독교인으로서 말의 변화를 이야기 합니다.
먼저 1절 말씀 읽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생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워온
지식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더 큰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자 세상에서 높임을 받기 원하듯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서로 높임을 받고자 하는 갈등과 가르침을 받기 보다는 가르치고자 하는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선생이 된다는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입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그 만큼 책임이 커지는 것이고 책임이 크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이 크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익한 말은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36절37-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36-37 KRV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이 따르다. 함부로 내 뱉는 모든 말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 입니다.
또한 선생으로서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말은 언제나 쉽게 실수가 따릅니다. 그리고 이 실수의 결과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절 읽겠습니다.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사람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즉 누구난 실수를 한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자의 실수와 배우는 자의 실수의 무게는 다릅니다.
배우는 자의 실수보다 가르치는 자의 실수의 무게는 매우 무겁습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서는 선생을 하는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선생으로서의 말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말은 잘 사용하면 축복이 되지만 잘못 사용한다면 화평을 깨고 많은 심령의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말은 자신과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줍니다.
말을 하는 작은 혀가 삶을 움직인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말, 말을 하는 혀는 조절하거나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본문 3절에서 8절 읽겠습니다.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마차를 끄는 말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고 배를 움직일때 배를 조종하는것은 사공이 키를 통하여 조종합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이보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작은 혀를 제어하는 것은 더 쉬운일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혀, 말로 인하여 많은 다툼과 소란이 생겨납니다.
혀를 조절하는것은 불가능 합니다. 혀를 조절할 수 있다면 말에 실수가 없다면 자신의 모든 삶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심판을 받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실수중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입으로 하는 실수 입니다.
모든 공동체에서의 문제는 말로 부터 나옵니다. 그러니 말을 적게 하시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은 불과 같습니다. 제어를 한다면 우리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우리의 삶을 가져갑니다.
불씨가 많으면 불을 제어하기 힘들고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조심하시고 말을 줄여 내가 제어할 수있는 책임 질수 있는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말은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 사용한다면 큰 화를 가지고 오지만 잘 사용한다면 축복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말, 혀를 어떻게 사용해야할까요?
본문 9-12절 읽겠습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성숙해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성숙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직 미성숙한 우리 영아유치부 아이들을 보면 일관성이 없으며 또한 참을성이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합니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우는것이 아이들 입니다.
저번주도 아이들하고 밥을 먹는데 한아이가 밥을 다 먹고 더 먹고 싶다고 해서 밥을 더 달라고 해서 더 가져다 줬는데 갑자기 안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행동에 일관성이 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이 있습니다. 참아야 할때 참고 해야할때 하는 것 입니다.
이처럼 성숙한 신앙생활도 똑갑습니다. 일관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입에서는 한가지의 말만 나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 받아 선하여 졌습니다. 그러기에 선한 말을 해야하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하수가 오염되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당연히 오염된 물일 것 입니다.
이처럼 말은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혀만 길들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혀만 길들인다면 말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위선자가 되고 마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말에 성숙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을 점검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1절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1 KRV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말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소리만 될 뿐입니다.
그러니 감정을 따라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고백하고 선포하는 입술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통하여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고백하고 있는지
믿음에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지
생명을 전달하는 영적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지
내가 하고 있는 말의 근원,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말에 온전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자신과 환경이 아닌
주님 앞에서 죽어지는 작업과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님께 온전히 붙어 있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