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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일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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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3절. 구원의 조건과 자격(24년 10월 20일, 김성훈 전도사)  
   성은교회   작성일 24-10-19 20:32    조회 21    댓글 0  
 

말씀: 갈라디아서 21~3

제목: 구원의 조건과 자격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오늘 갈라디아서 2장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바울은 다마스커스에서 회심 이후 이방인들에게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감당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절 읽겠습니다.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이렇게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지 벌써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에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당시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이 생기다 보니 당시 초대 교회에서는 이방인들도 구원받기 위해 유대 율법, 특히 할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이방인 성도들의 구원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에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나바와 디도입니다. 특히 디도는 이방인이며 무할례자였습니다. 이방인 할례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장소에 논란의 대상인 이방인 무할례자 디도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정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택한 것은 정면 돌파입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로마서 11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의 문제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물러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디도를 같이 데리고 간 것입니다. 디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할례받지 않는다고 구원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바울이 디도의 조건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디도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당당하게 디도와 함께 갔습니다. 그는 구원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고지식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융통성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고지식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각각의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융통성의 장점은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타협해야 하는 조건이 생깁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흔히들 고지식하다고 말합니다. 더 세게 말하면 꼰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지식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것과 남들에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렇게 고지식한 꽉 막힌 사람보다는 융통성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람들로부터 더 호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지식한 면모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법에 관련된 일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법은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법조계에 있는 사람이 비난받을 때는 이 법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 속성이 무너져내렸을 때 같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비난받을 때도 타협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꾸 세상과 타협하려고 할 때 무너져내리는 것 같습니다.

 

이 복잡하고 자꾸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타협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성공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의 문제만큼은 바울처럼 고지식한 면모를 보여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다른 어떠한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복음의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첨가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융통성을 발휘하여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디도를 잠시 다른 곳에 있게 할 수 있었지만, 굳이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디도를 함께 데리고 왔는지 깊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혹시 그리스도의 복음에 세상의 관점을 가지고 와서 타협하려고 하는 조금의 어떤 마음이라고 가졌는지 한 번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에게 고지식한 면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융통성도 발휘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2절 읽겠습니다.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고지식하게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리적으로 말로 씨름하기보다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자신이 이방 사람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유력한 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확인받으려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며, 자신이 그동안 전도한 공적을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14년간 전파한 예수님의 복음이 절대로 헛된 것이 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행동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3절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디도가 할례를 받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구원의 조건도 아니고 받는다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더럽히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 읽어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고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님의 순종, 십자가 희생, 그리고 부활입니다.

 

다른 것을 믿거나 내 기억대로 생각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변형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칫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이 헛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너무나 간편한 길을 마련해 주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시고 구원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선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지금 사회는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자기를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과 자격을 갖추기 위해 아이들은 지금도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의 사회에 익숙해지다 보니 인간의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구원이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색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내가 노력으로 성취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노력해서 알아봐야겠다는 관심을 점점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이 달콤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가 쓰라릴 때까지 그리스도는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달콤한 삶을 살아가고 계신다면 그 달콤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에 쓰라린 경험을 하고 계신다면 삶의 달콤함은 그리스도께 한 번 발견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쓴 경험을 하고 계신다면 어떻게 달콤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구원의 조건과 자격은 인간 스스로 어떠한 조건과 자격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만날 때 그제야 비로소 구원을 누릴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고 우리 모든 성도님이 주님의 구원이 꿀과 같이 달콤하며 풍성한 사랑의 은혜 안에서 누리시며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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